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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소식을 친구 목소리로…공동체라디오 지속 가능하려면

등록 2023-02-24 07:00수정 2023-02-24 09:33

소규모 지역 대상 공익목적 비영리 에프엠 라디오 방송
2005년 7곳으로 출발해, 올해 7월이면 27곳으로 늘어
지역 소통 활성화, 국지적 재난 대응 등에 큰 기여
남해에프엠(FM)을 운영하는 남해에프엠공동체라디오방송의 이태인 대표가 지역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다.
남해에프엠(FM)을 운영하는 남해에프엠공동체라디오방송의 이태인 대표가 지역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을 남해 주민들이 직접 만드니까, 다른 방송에선 들을 수 없는 이웃 이야기가 많아 좋습니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 이윤미(40)씨는 출퇴근할 때 승용차의 라디오 주파수를 91.9㎒에 고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6일 개국한 공동체라디오방송 남해에프엠(FM)이 나오는 채널이다. 남해 주민 박영복(57)씨도 “동네 소식을 친구 목소리로 들으니 좋고, 희망곡을 신청하면 바로 틀어주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지난 17일 취재를 위해 남해군 경내로 넘어서자마자 승용차의 라디오 주파수를 91.9㎒에 맞췄다. 두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수한 경남 서부 사투리였다. 프로그램 이름은 ‘서재심·정영숙의 남해 인문학 이야기’. 이날은 남해군 곳곳에 남아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흔적과 사연이 주제였다.

■ 지역 밀착, 국지 재난 대응 프로그램 눈길

공동체라디오방송은 200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뒤 지금까지 27곳이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았다. 현재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곳은 2005년 8월 개국한 대구 성서공동체에프엠 등 13곳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남해에프엠은 공동체라디오계에선 막내 격이다. 하지만 허가를 받고 개국을 준비하는 방송이 여러 곳이어서 남해에프엠의 ‘막내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권순호 방통위 지상파방송정책과 사무관은 “허가를 받으면 2년 내 개국해야 한다. 허가받은 14곳이 늦어도 오는 7월 전에 개국할 예정”이라며 “개국이 마무리되면 수요 조사를 진행해 추가 허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지역 안의 ‘골목 소식’을 주로 전한다. 그런 만큼 지역 단위 소통을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 예로 성서공동체에프엠의 주요 청취층은 달서구에 사는 성서공단 이주노동자다. 매일 밤 2시간 동안 몽골·중국·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파키스탄·네팔의 이주노동자들이 돌아가며 진행을 맡아 고국 소식을 전한다. 지난해 3월 개국한 고려방송의 운영 사업자는 광주광역시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의 마을공동체 ‘고려인마을’이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지역 소식과 전세계 고려인 동포들의 소식을 전한다. 이 방송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 난민 신세가 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에 올 수 있게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광주에프엠은 국지적 재난 대응 플랫폼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태풍 힌남노가 광주·전남을 지나던 지난해 9월5일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11시간 동안 특별 생방송을 편성했다. 방송 지역인 광주 북구의 태풍 상황과 피해 소식을 주로 전해 주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광주에프엠 운영사인 광주시민방송의 유영주 대표는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예측 불가능한 국지적 재난 대응에 유용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 영세성 벗어나려면?…“지원 조례 제정 필요”

이렇듯 착실히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동체라디오방송이지만, 참여하는 개인의 보람과 사명감에만 의지해선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가장 큰 고민은 영세성이다. 방통위 자료를 보면 2005년 개국한 7개사의 연간 매출액은 모두 합쳐 15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매출이 가장 많은 곳도 5억원에 그치고, 1억원이 안 되는 곳도 있다. 종사자 수도 대표·임원을 합쳐 10명 미만이다. 프로그램 진행 등 많은 부분을 자원봉사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동체라디오방송 운영 사업자들은 좀 더 안정적으로 풍부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기 위해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태인 남해에프엠공동체라디오방송 대표는 “개국 이후 지출은 월평균 700만원인데, 수입은 다 합쳐서 150만원밖에 안 된다. 예비마을기업 등 지자체 공모사업에 응모해 받는 지원금으로 근근이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안병천 한국공동체라디오방송협회장도 “공동체라디오는 공익 목적 비영리 방송이기에, 지자체 지원금 등 공적 지원은 필수다. 그런데 대부분 지자체는 지원금을 편성하지 않고, 편성하는 곳도 연간 수백만원에 그친다”고 아쉬워했다.

송신시설 개선도 미루기 어려운 과제다. 1개 자치구만을 방송권역으로 삼는 서울 등 대도시 방송사는 큰 문제가 없지만, 영월·옥천·남해·영주·성주처럼 면적이 넓은 군지역에서는 10W 이하 출력으로는 방송권역 전체에 전파를 보낼 수 없다. 출력을 높이고 송신시설 수도 늘리는 게 필수란 얘기다. 안병천 회장은 “우리보다 앞서 도입한 일본처럼 공동체라디오방송이 활성화되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운영사에 대한 자금 지원과 시설 개선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1992년 공동체라디오방송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현재 전국적으로 340여개 방송사가 운영되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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