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1일 노동절을 맞아 “2023년을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의 원년으로 삼자”는 성명을 채택했다. 경남이주민센터 제공
경남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ㄱ씨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30분까지 휴게시간 1시간30분을 빼고 매일 13시간씩 일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직장을 옮기고 싶지만, 현행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의 퇴사·이직 등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ㄱ씨는 “한국에 더 있고 싶지 않다. 계약이 끝나면 즉시 가족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선원노동자로 지난해 1월 입국한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 ㄴ씨는 7개월 동안 거의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했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600만원이나 체불됐다. 견디지 못한 ㄴ씨는 사업장에서 달아나 경남이주민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선주 쪽은 그가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점을 악용해, 400만원에 체불임금 문제를 처리했다. ㄴ씨는 불법체류자라는 불안한 꼬리표를 단 채로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옮겨 다니고 있다.
경남에 사는 네팔·몽골·미얀마·방글라데시·베트남·스리랑카·우즈베키스탄·인도네시아·일본·중국·캄보디아·태국·파키스탄·필리핀 등 14개국 교민회로 이뤄진 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1일 노동절을 맞아 “2023년을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의 원년으로 삼자”는 성명을 채택했다.
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취약한 업종이나 사업장의 한국인 인력난을 이주노동자로 보완하는 방편으로 고용허가제를 도입했지만, 최근 한국 정부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특정 산업에 외국인을 투입하는 정책으로 확대하고 있다.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표적 사례로 농촌 계절노동자와 조선업 이주노동자 한시적 확대 문제를 지적했다.
농촌 계절노동자 제도는 농번기 농촌에 단기간 발생하는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입국시켜 3개월가량 농촌에서 일을 시킨 뒤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중도 이탈률이 50%를 넘기는 등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감금 등 이탈을 막기 위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조선업 이주노동자 한시적 확대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 때문에 국내에서 노동자를 구하지 못하자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조선업에 이주노동자를 별도로 배정받아 투입하는 것이다.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뒷전으로 미루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숙련공 육성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또 5명 미만 사업장과 농축수산업 등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 구제, 선원노동자 도입·관리를 전담할 공공기관 지정, 미등록체류자 추방 중단과 합리적 양성화 방안 제시 등을 촉구했다. 국회와 지방의회에 인종차별금지법과 인종차별금지조례 제정도 요구했다.
수베디 여거라즈 경남이주민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이주노동자 정책 관련 최근 가장 심각한 것이 농촌 계절노동자와 조선업 이주노동자 한시적 확대 문제이다. 농촌에서 단기간 일할 이주노동자 입국 과정에 불법 브로커가 끼어들면서 피해자가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다. 또 동남아의 조선업 숙련공을 한국으로 불러모으면서 동남아 현지 조선업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결국 한국 사회 전반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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