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마당에 전시된 ‘1592년 거북선’. 최상원 기자
22일 경남 거제시 일운면 조선해양문화관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다를 등지고 선 ‘1592년 거북선’이었다. 비록 뭍으로 끌려나와 전시물로 활용되는 신세였으나, 선체 앞부분에 솟은 용머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왜군을 향해 유황불을 뿜을 듯 기세가 당당했다. 하지만 바닷바람을 직접 맞는 배의 뒷부분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꼬리는 조각나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후미는 대포를 맞은 듯 구멍이 뚫려 2층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철저한 문헌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던 거북선이 건조된 지 12년 만에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에 꼬리가 부러지는 등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파손돼 안전사고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 거북선의 운명은 이르면 오는 26일 결정된다.
문제의 거북선은 2011년 탄생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경상남도는 2008년부터 거북선과 판옥선 등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군선의 복원을 핵심으로 하는 ‘이순신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40억원을 들여 거북선과 판옥선을 1척씩 건조해 거북선은 거제시에, 판옥선은 통영시에 배치한다는 게 경상남도의 구상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의 원형을 철저히 고증하고, 배의 재료도 당시와 같은 금강송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원형을 복원한 명품을 만든다는 뜻을 담아 두 배에는 ‘1592년 거북선’ ‘1592년 판옥선’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금강송 대신 값싼 수입 소나무(미송)를 81%가량 사용한 사실이 2011년 완성 직후 드러나면서 ‘짝퉁 거북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제작 업체와 법정 싸움을 벌인 경상남도는 2012년 9월 법원의 화해권고를 받아들였는데, 결과적으로 소송비용(3천만원)을 포함해 2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거북선과 판옥선을 1척씩 만든 것으로 끝났다.
거북선은 2011년 6월17일 조선해양문화관이 있는 지세포항 앞바다에 띄워졌다. 그런데 바닥에 물이 차오르면서, 선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펌프를 가동해서 24시간 물을 빼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거제시는 2012년 거북선을 뭍으로 끌어올려 조선해양문화관 마당에 전시했다. 이후 관리비로 1억5천여만원을 썼지만, 소금기 머금은 비바람에 노출된 거북선의 나무 선체는 빠른 속도로 부식됐다.
결국 거제시는 거북선을 민간에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2월28일 감정가액 1억1750만원에 경매 입찰 공고를 냈다. 그러나 7차례나 유찰되면서 입찰가는 뚝뚝 떨어졌고, 지난달 16일 8차 입찰에서 154만5380원에 낙찰됐다. 이날 낙찰받은 신아무개씨는 “거북선을 폐기한다는 소식이 너무 안타까워 응찰했다. 이순신 장군 탄생일인 1545년 3월8일에 맞춰 154만5380원을 적어냈다”고 말했다.
처참하게 부서진 ‘1592년 거북선’의 뒷부분. 최상원 기자
거북선 주인이 거제시에서 신씨로 바뀌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신씨와 거제시는 6월25일까지 신씨가 거북선을 가져가지 않으면 거제시가 거북선을 폐기하기로 계약했는데, 이날까지 거북선을 가져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초 신씨는 조선해양문화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소유지로 거북선을 옮겨 역사교육용 현장체험 시설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신씨의 땅이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어 ‘공원계획 변경 허가’ 등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순탄하게 처리되더라도 1년이 넘게 걸리는 일이다. 길이 25.6m, 폭 6.87m, 높이 6.06m에, 무게가 120t이나 나가는 거북선을 옮기는 것도 문제였다. 워낙 선체가 낡아 무리해서 옮기면 부서지거나 사고가 날 위험성도 컸다.
신씨는 <한겨레>에 “처음에는 거북선을 칠천량해전공원 같은 이순신 장군 관련 시설에 기부할 생각이었다. 가져가겠다는 곳도 많았다. 그런데 이동과 관리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가 인수를 거절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땅에 옮기려는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어떻게든 거북선을 살려보고자 거제시에는 인수기한 연장을 요청하고, 국립공원공단에는 허가 절차의 신속 처리를 부탁해둔 상태”라고 덧붙였다.
난감해진 건 거제시다. 옥치덕 거제시청 관광과장은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거북선을 폐기하는 건 큰 부담이다. 거북선을 지키겠다는 신씨의 의지도 강하다. 그래서 인수기한을 한달 정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태풍·장마 전에 반드시 지금 장소에서 옮겨가야 한다”고 했다. 거제시는 거북선 이전이 무산될 경우 선체에 쓰인 목재는 소각하고, 금속은 고물상에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이재성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해양자원과장은 “신씨에게 소유지를 자연학습장으로 변경 신청을 하면 검토하겠다고 회신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특정인을 위해 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