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사하구 을숙도의 길고양이 급식소 모습. 김영동 기자
지난 22일 부산 사하구 을숙도 체육공원 나무 그늘에 성인 남성 팔뚝 크기의 나무 상자 4개가 보였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동물연합)이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다. 상자 위에는 토종 길고양이로 불리는 ‘코리안 쇼트헤어’ 1마리가 드러누워 하품을 했다. 한쪽 귀 끝이 살짝 잘린 상태였다. 티엔아르(TNR·포획해 중성화 뒤 방사)를 완료했다는 표시다.
“인마 참, 팔자 좋아 보이네. 부럽다, 자슥아.” 산책 나온 박병호(64)씨가 길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 드러버진다이가. 빨리 온나.” 아내의 뾰족한 목소리에 놀란 박씨가 서둘러 손을 거둬들였다. 길고양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품속에 묻었다.
문화재보호구역이자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인 을숙도에 길고양이가 나타난 것은 2002년 자동차극장이 문을 연 뒤부터다. 권세화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 국장은 “방문객이 버리고 간 음식물 등에 길고양이가 모여든 것으로 보인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들은 한번 머물던 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길고양이 번식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을숙도 길고양이가 200~300마리에 달했던 2010년대 중반부터다. 자동차극장 주변에 터를 잡았던 길고양이들이 먹잇감이 부족한 겨울철이 되자 주변 새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동물연합이 나서 2016년 을숙도에 급식소 14개를 설치했고, 부산시도 지원에 나서 급식소 12개를 추가로 만들었다. 티엔아르를 통해 개체 수 조절에 힘썼다. 현재 을숙도 길고양이는 70여마리로 파악된다.
부산시 사하구 을숙도의 길고양이 급식소 모습. 김영동 기자
그런데 문화재청이 지난달 부산시에 급식소를 모두 철거하고 90일 이내에 원상복구 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천연기념물 179호로 지정된 문화재보호구역에 현상변경 허가 없이 급식소를 무단 운영해선 안 된다는 이유였다. 앞서 동물연합은 2016년 문화재청에 급식소 설치를 위한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지만, 문화재청 심의에서 반려된 바 있다. 부산시 등은 최근까지 두차례에 걸쳐 급식소 12개를 자진 철거했다.
동물연합 쪽은 “배가 부른 고양이들은 조류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급식소가 철거되면 중성화된 고양이가 도태되고, 외부 유입 길고양이가 이곳에 자리를 잡아 오히려 철새 등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시 수의사회 관계자도 “을숙도 생태계는 나름 조화롭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문화재청의 행정명령은 길고양이 습성 등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한 절차적 대응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