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아파트 참사’ 피의자 안아무개(42)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창원지법 315호 대법정.
“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이상 살기가 싫어요. 아이가 온 몸을 계속 칼에 찔리며 ‘아파요.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던 장면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ㅊ(42)씨는 지난 4월17일 새벽 사망 5명, 부상 17명의 인명피해를 낸 ‘진주 아파트 참사’에서 피의자 안아무개(42)씨가 마구 휘두른 흉기에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막내딸(12)을 잃었다. ㅊ씨는 안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당시 상황을 겪지는 않으셨지만, 딸을 잃은 저와 같은 심정으로 사건을 판결해달라”고 재판부와 배심원단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이헌)는 25일 오후 1시30분 살인, 살인미수, 특수상해, 현주건조물방화 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된 안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시작했다. 재판은 창원지법 대법정에서 27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되며, 선고는 마지막 날인 27일 저녁 6시께 배심원 의견을 참고해서 내려질 예정이다.
국민참여재판에선 배심원 9명이 재판 전체 과정을 참관한 뒤, 유·무죄 여부와 양형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낸다. 이를 위해 재판부는 20살 이상 창원시민 50명으로 이뤄진 배심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이날 오전 무작위 추첨을 통해 배심원 9명과 예비배심원 1명을 선발했다.
안씨와 안씨 쪽 변호인은 검찰이 제기한 안씨의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한 상태이다. 따라서 재판은 안씨의 유·무죄 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형량만 정하면 된다. 재판부는 쟁점을 범행 당시 안씨가 심신미약 상태였는지, 계획적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 등 2개로 정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안씨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심신미약을 이유로 양형을 감경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씨 쪽 변호인은 “안씨는 조현병 치료를 받았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계획적 범행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안씨는 재판이 시작되자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변호인과 귓속말을 했고, 검찰이 공소사실을 설명하자 흥분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며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안씨는 또 자신의 변호인이 설명하는데도 “내가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 뭘 했나? 제가 변호할 수 있게 만들어 주든지요”라며 소리를 질러서, 재판부로부터 퇴정 당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재판은 인정신문과 양쪽 모두진술 등 모두절차, 증인신문과 증거조사, 피고인 신문, 양쪽 의견진술과 재판장 설명 등 종결절차, 유·무죄 평결과 형의 양정 등 평의·평결, 판결선고 순으로 진행된다. 첫날인 25일엔 모두절차와 증인 3명의 신문이 진행됐다. 첫날 증인으로 채택된 경찰관·유족·피해자 등 3명은 모두 안씨와 대면하지 않기를 원해서, 안씨를 법정 밖으로 내보낸 상태에서 증인신문을 했다.
어머니(67)를 잃은 한 유족은 증인으로 출석해서 “그 사건을 겪은 이후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자지 못한다. 눈만 감으면 계단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루 1시간도 채 자지 못해서, 계속 두통에 시달린다. 음식도 먹으면 채하고 구토를 한다. 비가 와서 고인 물을 보면 피가 고인 것처럼 보여서, 비오는 날은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증인은 물론, 검사와 배심원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현행법상 살인죄와 살인미수죄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현주건조물방화죄와 현주건조물방화치상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하지만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심신미약 상태인 것이 인정되면 감형받을 수 있다. 지난 7월2일 공주보호감호소 정신과의사는 안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사물을 변별한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심신미약 판정을 했다. 그러나 범행 당시 안씨와 직접 만났던 증인들은 “안씨가 결코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조현병 중증환자인 안씨는 지난 4월17일 새벽 4시25분께 자신이 사는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놀라서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애초 안씨에 대한 재판은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1부가 맡았는데, 안씨가 지난 7월 국민참여재판을 받고 싶다고 의견서를 냄에 따라 국민참여재판 전담 재판부가 있는 창원지법으로 사건이 넘겨졌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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