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가 지난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공립대 직선 총장 선거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 제공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대부분 폐지된 국공립대 총장 직선제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부활하고 있지만, 투표 반영 비율을 놓고 빚어지는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정규직 교수들의 투표 반영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이를 고수하려는 교수들과 총장 선출에 참여할 기회를 높여달라는 학생, 직원, 조교, 비정규직 교수들의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사실상 교수가 총장을 선출하는 ‘무늬만 직선제’를 막고 제대로 된 학원 민주화를 위해 대학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서는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한겨레> 취재와 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국교련)의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국교련에 가입한 전국 4년제 국공립대학 41곳 가운데 교수·직원·학생·조교 등의 투표로 선출된 직선 총장은 모두 25명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부산대와 서울시립대만 직선제를 유지했던 것에 견주면 문재인 정부 출범 2년6개월 만에 직선제로 총장을 뽑은 학교가 12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총장 직선제를 통해 대학 민주 선거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문제는 구성원들의 투표권 비율이다. 투표권 비율이 가장 높은 구성원은 교수다. 전체 투표권의 73~91%를 차지했다. 반면, 학내 구성원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학생들의 투표권 비율은 광주교대(13%)만 10%를 넘었고 나머지 24곳은 1.6~9.5%로 한자릿수였다. 25개 학교의 평균을 계산해보니, 교수 투표권 비율은 81.75%였고, 학생 투표권 비율(공주대 제외)은 4.51%였다.
교수의 투표권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시립대(91%)였다. 이어 부산대(87.2%), 전북대(84.8%), 군산대(84.2%), 제주대·충북대(84%) 순서였다. 반면 교수의 투표권 비율이 가장 낮은 학교는 광주교대(73%)였다.
교수에 이어 투표권 비율이 높은 구성원은 직원(6.25~18.5%)이었다. 서울시립대(6.25%)와 부산대(9.6%)를 뺀 23곳이 10%를 넘었다. 직원의 투표권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지난달 총장을 선출한 강릉원주대(18.5%)였다.
학생의 투표권 비율은 직원보다 낮았다. 교수와 직원보다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투표권 비율은 가장 낮은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치러진 충남대 총장 선거를 보면, 전체 정규직 교수가 912명이고 학생은 2만1322명이었지만 투표권 비율은 교수 81.3%, 학생 3.3%였다. 학생이 교수보다 23배 많지만, 교수의 투표권 비율이 오히려 학생의 24배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국공련)는 지난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공립대학에서 총장을 직선제로 뽑고 있지만, 학생의 전국 평균 투표권 비율은 3~4%대에 불과하다. 직선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더는 대학이 교원만의 연구소가 아닌 구성원들의 대학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수들의 불만도 크다. 직선 총장이 재임 중인 국공립대 25곳 가운데 비정규 교수들에게 투표권을 준 대학은 한곳도 없다. 부산대 교수회가 내년 2월 직선 총장 선출 때 비정규 교수들에게 투표권 부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평의원을 대상으로 지난 5일 투표에 부쳤으나 6 대 4 비율로 부결됐다.
총장 직선을 부활시킨 교수들이 학생과 직원의 투표권 비율 결정의 잣대로 삼는 것은 직선 총장을 선출한 국공립대 평균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직선제로 전환하면서 2015년 11월 직선 총장을 뽑은 부산대 규정을 참조해서 투표권 비율을 정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국공립대 평균으로 둔갑했다. 2015년 부산대 직선 총장 선출 규정은 고현철 부산대 교수(국문학과)의 목숨과 바꾼 것이다. 고 교수는 재정 압박을 가해서 간선제를 강요하던 박근혜 정부에 굴복한 대학본부가 차기 총장을 소수가 투표하는 간선제로 선출하려 하자 그해 8월 대학본부 건물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결국 부산대는 간선제를 포기하고 같은 해 11월 박근혜 정부 때 유일하게 직선 총장 후보자를 선출했다. 당시 투표권 비율은 교수 87.2%(1185명), 직원 9.6%(130명), 조교 1.6%(22명), 학생 1.6%(18명)였다. 서울시립대도 박근혜 정부 때 직선 총장 후보자를 선출했다. 서울시립대를 뺀 모든 국공립대 총장 후보자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공련 의장인 조한수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2015년 부산대 직선 총장 규정은 대학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회의를 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급하게 선거를 치르기 위해 정해졌다. 이 규정에 기대어 교수님들이 투표권 비율을 배정하다 보니 지금의 평균이 만들어졌다. 이제 첫번째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총장선거 투표권 비율을 결정하는 근거는 교육공무원법 24조다. 24조는 국공립대 총장은 대학의 추천을 받아 교육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하도록 한다. 대학은 임용추천위원회(추천위)를 꾸려서 추천위가 후보자를 선출하거나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총장 후보자를 선출해야 한다.
추천위가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것이 간선제다. 교원의 합의된 방식 가운데 하나가 직선제인데, 교육공무원법에서 합의 당사자를 ‘교원’으로 명시했기 때문에 교수들은 투표권 비율을 결정할 때 학생·직원·조교 등을 배제할 수 있다.
결국 학생과 직원의 투표권 비율을 높이려면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한수 국공련 의장은 “민주주의의 보루인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하는 집단이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원칙인 1인 1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숫자가 많은 학생도 총장선거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교수님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공련은 지난 8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촉구하는 전국 학생 3만명의 서명을 받아서 교육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일부 교수도 학생의 투표권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이형철 국교련 상임회장은 “학생도 성년이고 대학 구성원이므로 대학 총장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들의 입장에선 학생과 직원의 과도한 투표권 비율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관철하려고 하지 말고 교수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점차 비율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모든 구성원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영향력을 차지해야 하는데, 현재 국공립대 총장 직선제는 학생들의 투표 반영 비율이 너무 낮다”며 “학생들의 투표 반영 비율을 높여야 하나, 일률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대학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광수 구대선 허호준 최상원 송인걸 오윤주 김용희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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