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동광동 옛 부산경찰서 터 옆 계단에 박재혁 의사의 폭탄투척 의거 안내판이 세워졌다. 부산 중구 제공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부산 중구는 30일 일제강점기 옛 부산경찰서(중구 동광동) 터 옆 계단에 박재혁(1895~1921)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안내판을 설치했다. 박 의사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유족과 지자체가 함께 만든 안내판에는 박 의사의 의거 내용이 새겨져 있다.
3대 독자였던 박 의사는 공립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1917년 6월 중국 상하이로 넘어갔고, 1920년 4월 의열단에 가입했다. 무력투쟁을 위해 박 의사는 1920년 9월14일 부산경찰서로 갔다. 중국인 고서적상 행세를 하며 당시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의 면회를 신청했다. 하시모토는 중국 고서를 좋아했고, 박 의사와 면담했다. 박 의사는 서장실에서 하시모토를 만나서 폭탄을 끄집어낸 뒤, 독립투사들을 잡아 괴롭힌 죄를 꾸짖으며 바닥에 폭탄을 던졌다.
구속된 박 의사는 대구형무소에 투옥됐다. 일제는 혹독한 고문을 가했고, 1921년 3월 박 의사의 사형을 확정했다. 박 의사는 폭탄이 폭발할 때 다친 상처와 고문으로 생긴 지병 등 고통이 심했지만 “내 뜻을 다 이뤘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 왜놈 손에 사형 당하기 싫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박 의사는 1921년 5월11일 단식과 고문 후유증 등으로 결국 순국했다. 박 의사의 의거는 이후 항일운동에 불을 지폈다.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뒤 1년 동안 국내에서 일제 경찰 관서를 습격한 사건이 91건이나 발생했다. 하지만 혼자서 무장투쟁에 나선 탓에 기록이 거의 없어 지금까지 박 의사의 의거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송종홍 부산 중구 부구청장은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항일운동 흔적을 되살리고, 상징적 의미가 있는 장소인 옛 부산경찰서 터도 알림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깊은 의미와 교훈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구는 박 의사 생가터에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