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제2안민터널 건설 현장 인근 문화재 발굴 현장. 이 유적지는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군과 고분·생활 복합유적군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 관을 넣어두는 널방을 나무로 만든 무덤)군 가운데 가장 크고, 삼국시대 고분·생활 복합유적군 가운데서도 가장 큰 유적지가 경남 창원시 제2안민터널 건설 현장 인근에서 발굴됐다. 관련 학계는 “현재 진해라는 도시의 출발점이자, 삼국시대 진해 지역 최고 중심지로서 당시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제2안민터널을 건설하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창원시는 문화재 보존 방안으로 유적전시관 건립 등을 검토하되 터널 공사는 밀어붙일 기세다. 계획대로 터널을 건설하면 유적지는 사라지게 된다.
4세기 후반 조성 ‘가로·세로 1㎞ 규모’ 도시 발굴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석동과 성산구 천선동을 연결하는 제2안민터널을 2016년부터 건설하고 있다. 제2안민터널은 폭 20m 왕복 4차로 도로로, 전체 길이는 터널 1.96㎞와 접속도로 1.84㎞ 등 3.8㎞이다. 2023년 3월 완공 예정으로, 보상비 427억원을 포함해 1738억원이 들어간다. 공정률은 8월 말 현재 45%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사업을 추진하며 문화재 발굴 전문기관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터널 접속도로와 석동나들목 등이 건설될 석동 쪽 출입구 인접지역 3만1370㎡에 대한 매장문화재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기간은 지난 3월30일부터 2022년 4월7일로, 실조사일수는 487일이다. 연구원은 전체 조사구역을 6개 지구로 나눈 뒤, 민원과 공사 시급성을 고려해 터널 출입구에 인접한 1지구 1만5077㎡와 2지구 4250㎡ 등 1만9327㎡를 먼저 발굴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발굴을 의뢰한 쪽과 발굴을 하는 쪽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10일 발굴 현장에서 전문가검토회의를 열었는데, 회의 결과를 정리한 ‘제2안민터널 건설부지 내 유적 정밀발굴조사 현황자료’를 보면, 이날까지 1지구와 2지구에서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 748기, 돌덧널무덤(석곽묘) 10기, 돌방무덤(석실묘) 28기, 독무덤(옹관묘) 13기 등 881기의 무덤이 확인됐다. 또 화로 모양 그릇받침(노형기대) 등 토기류 2622점, 청동으로 만든 칼자루 끝 장식(검파두식), 손잡이에 나뭇잎 세개 모양 고리가 있는 큰칼(삼엽형 환두대도), 철로 만든 창과 도끼 등 금속기류 1364점, 귀걸이·목걸이 등 장신구류 41점 등 유물 4027점이 출토됐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1지구와 2지구 발굴을 완료하면, 이곳에서만 삼국시대 덧널무덤이 1천기쯤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날 기준 1지구와 2지구 발굴조사 공정률은 70%(전체 지역은 38%)를 기록했다.
앞서 2012~2014년 제2안민터널과 연결될 ‘석동-소사간 도로’ 건설 때도 현재 조사구역과 맞붙은 지역에서 삼국시대 덧널무덤 500여기를 발굴했다. 연결된 두 지역을 합하면 삼국시대 덧널무덤 1500기에 이르는 셈이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4지구 1만290㎡와 5지구 1255㎡ 등 1만1545㎡ 구역은 같은 삼국시대 생활유적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검토회의는 이 일대를 ‘국내 최대 규모의 삼국시대 덧널무덤군’이자 ‘삶과 죽음의 공간이 뚜렷하게 구분된 국내 최대의 삼국시대 복합유적군’으로 결론 내렸다. 또 “중심구역에 대한 보존 방안을 검토하여 추진하기 바람”이라며 유적 보존 방안을 제시했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조사구역의 유적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 일대 가야 세력의 전성기였던 4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전체 유적 면적은 가로세로 각 1㎞가량으로, 당시로선 매우 큰 도시였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양지바른 언덕에 있으면서 바다와 인접해 거제도가 눈앞에 보이고,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와 고성의 소가야 사이에 있다. 바닷길을 이용한 중계무역 도시로 번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제2안민터널 인근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제공
방대한 유물·유적 보존 방안 두고 갑론을박 이어질 듯
아직 발굴 초기 단계인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면서, 문화재를 발굴하는 쪽과 터널을 건설하는 쪽 모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창원시,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등은 몇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발굴된 유적을 다시 흙으로 덮어 발굴 이전 상태로 보존하면서 인접지역을 개발하는 방식도 있지만, 지하에서 나오는 터널과 지상의 도로를 연결하려면 유적지를 모두 파내야 하므로, 이 방식도 쓸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쪽은 “고분 유적인 1지구와 2지구 발굴이 끝나는 11월 이후 현장설명회를 열어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발굴하기 전에는 지하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변수도 너무 많다. 게다가 생활유적인 4지구와 5지구는 아직 발굴조사를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다. 발굴이 끝나기 전에 보존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원 쪽은 또 “창원시는 발굴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발굴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고, 그래서 연구원도 일반적 조사 때보다 3배 정도 많은 인력을 들여 발굴하고 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나오고 있어, 예정된 발굴기한인 2022년 4월7일 이전에 발굴작업을 마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쪽은 “제2안민터널 건설은 도시계획에 따른 사업으로, 여기에 맞춰 관련 도로들이 건설됐거나 건설되고 있다. 게다가 제2안민터널 건설 사업에 이미 600억원 이상 투입됐다.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개통일을 예정된 2023년 3월보다 앞당기기는 어렵게 됐지만, 그렇다고 문화재를 피하려고 제2안민터널 선형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쪽은 또 “유적지 인근에 유물전시관 건립 또는 대표적 유물 원형 복구 전시, 영상물로 발굴 과정과 유적·유물 보존 등을 문화재 보존 방안으로 문화재청에 제안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창원시는 누구보다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허성무 창원시장이 시장선거 당시 ‘제2안민터널 조기 개통’을 약속했고, 지난달 3일 터널 공사 현장을 방문해 “출퇴근 시간 기존 안민터널의 교통체증을 완화하고 시민 편의 증진을 위해 제2안민터널 조기 개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예정보다 1년3개월 앞당긴 내년 12월을 조기 개통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허 시장이 지난달 3일 조기 개통일을 제시한 것은 얼마나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됐는지 보고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다. 터널이 하루라도 빨리 개통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당시 제시했던 조기 개통일은 현재로썬 의미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 문제와 관련해 창원시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문화재청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어, 하루빨리 결론이 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 다만 도로를 건설하고 남는 유적지 인근 빈터에 유적전시관 설치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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