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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고통 대물림 2300여명…언제쯤 정부가 인정할까요?

등록 2021-05-28 05:00수정 2021-05-28 08:14

내일 원폭 피해 2세 김형률씨 16주기
기형·유전성 난치병 등 시달려
‘인과 불분명’ 이유로 사각지대에
김씨 ‘후유증 유전 인정’ 외쳤지만
“환우들 의료·생계비 지원 나서야”
반핵평화운동가 고 김형률씨. 숨지기 3년 전인 2002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제공
반핵평화운동가 고 김형률씨. 숨지기 3년 전인 2002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제공

“원폭 피폭후유증으로 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병에 걸려 폐 기능의 70%를 잃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삶을 사는 저에게 원폭과 유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 행위입니다. 원폭과 유전의 관련성 증명은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2005년 3월7일 반핵평화운동가 김형률씨는 병상에서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80여일 뒤인 2005년 5월29일 35살 나이로 숨졌다. 김씨가 떠나고 벌써 16년이 흘렀지만, 원자폭탄 피폭자의 피폭후유증이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와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는 29일 오후 3시 경남 합천군 합천원폭자료관에서 ‘한국원폭2세피해자 김형률 16주기 추모제’를 연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한국인 7만여명도 피폭돼 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국인 2만3천여명은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들 대부분은 심각한 피폭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고 김형률씨 부모도 히로시마에 살다가 피폭됐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원폭피해자이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을 갖고 태어난 그는 2002년 3월22일 피폭후유증을 대물림한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을 위해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만들었다. 그의 목표는 원폭 피폭후유증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2013년 경남도가 도내 원폭피해자 자녀 244명의 건강상태를 조사해보니, 13.9%(34명)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선천성 기형은 손·발·얼굴·폐·심장 등에서 나타났고, 귀가 없는 사례도 있었다. 조사 대상의 9.1%가 장애인으로 등록해, 전국 장애인 등록률(5%)의 2배에 가까웠다. 국내 원폭피해자 자녀 가운데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23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피폭후유증 대물림을 증명하고 있지만, 피폭 대물림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경남도와 부산시·경기도, 경남 합천군 등은 원폭피해자 자녀들을 위한 지원조례를 갖추고 있지만, 피폭후유증의 대물림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원폭2세 환우들을 지원해온 ‘합천 평화의 집’은 “원폭피해자 1세대는 모두 70대 후반 이상 고령이라 이분들에 대한 지원은 앞으로 몇십년 안에 완전히 끝나게 된다. 하지만 피폭후유증이 후손에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원폭피해자 문제는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문제가 된다.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 피폭후유증의 대물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원자폭탄 피폭 희생자 1천여명의 위패를 모신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 위령각에서 청소년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원자폭탄 피폭 희생자 1천여명의 위패를 모신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 위령각에서 청소년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 원폭 피폭후유증의 대물림 여부를 밝히기 위해 정부 차원의 연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원폭피해자 자손 가운데 희귀난치성 질환을 많이 앓는 이유가 피폭후유증의 대물림 때문으로 밝혀지면, 국제적으로 심각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연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현행법은 원폭피해자를 원폭이 투하된 때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있었던 사람과 태아로 규정한다. 대한적십자사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생존한 국내 원폭피해자는 2천여명이며, 이들의 평균 나이는 81살이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사무국장은 “원폭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피폭후유증을 앓으면서, 후유증을 대물림한 자녀들의 고통까지 떠안아 2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원폭2세 환우들의 문제를 인권문제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피폭후유증의 대물림을 공식 인정하고, 원폭2세 환우들의 자립을 위해 의료비·생계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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