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기 위해,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목포·제주에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대만까지
아시아 학살 현장 다니며 슬픔과 고통을 기록하다
목포·제주에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대만까지
아시아 학살 현장 다니며 슬픔과 고통을 기록하다
인도네시아 페툴루 마을 바니안나무 제단. 그린비 제공
김여정 지음/그린비·1만3000원 전남 장흥 외딴 마을에 살던 증조할머니는 해가 질 때쯤이면 대문 앞 배롱나무 아래 앉아 신작로를 바라봤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할머니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저녁이 되면 쌀밥을 지어서 놋쇠 밥그릇에 가득 담아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두었다.” 그들이 기다린 이는 할머니의 오빠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오빠”를 불렀다. 할머니의 오빠는 농민운동을 주도하다 구속됐고, 목포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때 실종됐다. 할머니는 오빠의 시신이라도 찾으려 목포를 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다크 투어>는 지은이가 “하늘나라에서 애타게 오빠를 찾을 할머니에게 적어도 오빠의 마지막 행적을 알리고 싶어” 목포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목포형무소는 이미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의 오빠는 ‘목포형무소 학살 사건’ 때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뒤 철수하던 경찰이 수형자들을 전남 신안군 인근 해상에 수장한 사건이다.
목포형무소 전경(1930). 그린비 제공
말레이시아 바탕칼리 마을 공동묘지. 그린비 제공
제주도 너븐숭이의 애기무덤. 그린비 제공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다크 투어’ 김여정 작가 인터뷰
<다크 투어>의 김여정(47) 작가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영국지부, 동티모르 독립투표 선거감시단원 등 엔지오 활동가로 일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 폭파를 기록한 <그해 여름>으로 2020년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다크 투어>로 2020년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을 수상했다. 다음은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 내용이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책에도 썼듯이 할머니 오빠의 마지막을 찾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신 분이다.
―한국 외에도 인도네시아, 발리, 대만의 학살을 기록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정도 걸렸다. 사전 취재 등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아시아 학살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다. 현지 뉴스, 유족회, 외국 도서관 검색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 현지어도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공부했고, 한 나라를 최소 두번 이상씩 방문했다.”
―아시아 학살에 공통점이 있나.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대부분 반공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 고위직에서 평생을 잘 살았다. 유족과 학살자가 이웃에서 사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들도 말을 하지 않고 피해자들도 증언을 꺼린다.
―책이 얇고, 문체도 대중적이다.
“일부러 원고의 많은 양을 줄였다. 학살은 솔직히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주제는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가 읽었으면 했다. 서점에서도 학살 관련 쪽이 아닌 여행서 쪽에 꽂혔으면 한다.”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한강다리 폭파 뒤 용산폭격에 대한 증언들을 수집 중이다. 지금까지 120명 정도 인터뷰를 했다. 증인들이 대부분 80대 중반 이상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학살 기록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
“기록으로 남겨야 잊히지 않는다. 특별히 교훈같은 것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순수한 기록이 기억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다크 투어’ 김여정 작가 인터뷰
김여정 작가. 김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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