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지음/위즈덤하우스·1만6800원 여행, 친구, 그리고 친절함.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읽고 떠오르는 단어들엔 다정한 정취가 배어 있다. 여행을 그리 즐기지 않았던 지은이는 뉴욕,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에서 받은 인상을 책에 담았다. 친구가 머물던 뉴욕을 찾게 되면서 9년 전 시작된 이 여행기에서 지은이는 도시를 산책하며, 의도 없이 포착한 풍경들이 주는 순순한 정서를 차근히 펼쳐낸다. “반려 장미를 위해 열어둔 창문”처럼 스쳐 지나가버릴지 모르는 풍경에 주목하는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헨으로 떠나서는 여권 없이 오갈 수 있었던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함께 돌아보며 그곳의 문화, 환경, 사람들에 대한 단상을 편안한 문장으로 써낸다. 또 다른 친구가 머물던 오사카에 갔을 때나 신혼여행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했을 땐 유럽이나 미국과 또 다른, 낯설면서도 친근한 아시아의 시공간을 포착한다. 마치 ‘소설처럼’ 여행 이벤트에 당첨돼 가게 된 런던에선 찰스 디킨스, 셰익스피어, 해리 포터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며 발걸음에 풍성한 이야기를 더한다. 어느 도시에 가든 박물관과 갤러리를 둘러본 경험들도 차곡차곡 쌓인다. 각 도시에서 만난 폭력의 단면도 예민하게 감각하는데,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이기도 하기에 지은이의 생각을 함께 곱씹게 된다. <피프티 피플>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등으로 정세랑을 만나온 독자들에게 그의 첫 에세이는, 지구라는 넓은 범주 아래서 그의 소설을 조금 더 풍성히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듯하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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