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와 이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유기견이 아닙니다. 버려졌지만 살아남았으니까요. 보리와 지낸 스무날 남짓은 ‘임시보호’ 시간이었습니다. 두차례 버려지거나 포기된 아이는 미국으로 떠납니다.
버림받은 아이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뽀얀 털이 덮여 있어야 할 등에는 화인처럼 커다란 화상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보리에게 있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여러 생각과 기억이 실타래처럼 한없이 풀려나왔습니다. 10여년 전 아이 낳아 키우던 초보 엄마아빠 시절부터, 사회부에서 ‘베이비박스’를 취재하던 기억, 입양되고 입양하는 이들의 이야기. 상처받은 존재와 치유되는 생명에 대해 때때로 곱씹었습니다.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박종무 선생이 지은 <문밖의 동물들>(샘터)을 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버려진 반려동물이 13만 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버려진 동물 중 20%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를 당한다니, 2만6000 마리가 그렇게 떠났습니다. 보호소에도 가지 못하고 죽는 27%는 3만5000 마리입니다. ‘대학살’입니다.
보리라는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차례 버려진 뒤 절에 머물던 녀석이더군요. 보리는 불교에서 참다운 지혜, 깨달음, 앎을 뜻하는 말입니다. 화상자국마저 예쁘게 아문 보리는 마치 깨달은 양, 상처만 준 인간이란 존재를, 또다시 믿고 있었습니다. <문밖의 동물들>의 부제 ‘행복한 공존을 위한 우정의 기술’이 무엇인지, 보리를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리는 태평양을 넘어 기나긴 여정을 마치면, 루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영광의 전사라는 뜻처럼 살아가길 바랍니다. 산책길에 귀엽게 흔들리던 복슬한 보리 엉덩이를,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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