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의 탄생: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
김현철 지음/계단·2만원
강력반, 강력분에 쓰이는 그 ‘강력’이다. 강한 힘이다. 물리학 용어인 강력은 소립자 사이의 기본적 상호 작용 가운데 하나인 강한 상호 작용을 뜻한다. 중력이나 전자기력보다 강해서 강력이 됐다. 소립자 간의 기본적 상호 작용 중 약한 상호 작용도 있다. 이건 약력이다. 이렇게 중력과 전자기력, 강력, 약력은 우주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네 가지 힘이다.
중력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네 가지 힘 중 가장 약하고 유일하게 인력(끌어당기는 힘)만 작용한다. 중력은 “뉴턴에서 시작해 아인슈타인이 완벽하게 설명”했다. 전자기력은 자석과 자석이 서로 당기고 미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마찰력이나 장력 등도 전자기력에 해당하는데, 중력을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현상들의 근원으로, 대전된 입자 사이의 기본 상호작용이며 힘을 운반하는 입자는 광자다. 전자기력은 “패러데이와 맥스웰을 거쳐 양자전기역학까지 나아”가며 규명됐다.
방사능 연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겨 ‘강력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 마리 퀴리(오른쪽)와 딸 이렌 퀴리. 계단 제공
중력과 전자기력은 친근하다. 눈으로 볼 수 있어서다. 그러나 강력은 볼 수 없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인류는 강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방사선 덕분에 전자가 발견되고 원자핵을 알게 되고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찾게 됐는데, 양성자와 중성자가 좁디 좁은 핵 안에 함께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은, 중력이나 전자기력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핵 안에 있는 입자, 즉 핵자를 묶어주는 핵력을 찾아나선 수많은 과학자들의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탐사가 빛을 보아 오늘날 우리는 ‘강력’을 알게 되었다. 엑스선이 발견된 1895년부터 파이온을 찾아낸 1947년까지, 원자핵의 비밀을 찾아나선 숱한 과학자들의 대서사가 <강력의 탄생>에 담겨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절정인 장면을 찾으라면 유카와 히데키가 양자전기역학 이론에서 떠올린 가상 입자를 도입하여 핵의 구조와 핵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하고, 세실 파월이 가상 입자가 실재함을 발견하는 부분일 것이다. 일본 이론물리학자 유카와는 1934년 시월의 어느날 밤 갑자기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전자들 사이에 힘을 전해 주는 광자는 질량이 없지만 두 전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둘 사이에 힘을 전달할 수 있다. 힘이 미치는 범위는 두 전자가 주고받는 광자의 질량에 반비례하고, 광자의 질량이 영이라는 말은 두 전자가 거의 무한대로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양자전기역학 이론에 이미 알려진 핵력의 범위를 적용하여 “핵자들이 주고받는 입자의 질량은 전자보다 200배 정도 커야” 한다는 이론을 세운다.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입자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은 1935년이었다. 이어 영국 실험물리학자 세실 파월과 동료들이 실험을 통해 유카와 이론을 증명하는데 이때가 1947년이었다. 1949년 유카와에 이어 1950년 파월은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제 경우 강력의 희미한 정체만 파악했을 뿐이었다. (…) 강력의 진정한 모습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유카와와 파월은 하늘에서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천재들이 아니다. <강력의 탄생>에서 유카와와 파월이 차지한 분량은 일부에 그친다. 그들에 앞서 숱한 과학자들이 원자핵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들이 이 책에 풍성하다. 선배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유카와나 파월의 업적은 없었을 것이다. 양자역학이 나오기 전에 마리 퀴리는 방사선이 원자에 속한 성질임을 알아냈고,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했으며, 이에 앞서 앙리 베크렐은 방사선을 발견했고, 빌헬름 뢴트겐의 엑스선 발견이 선행됐다. 빅토르 헤스는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 우주선(cosmic rays)을 입증했고, 찰스 윌슨은 ‘안개 상자’를 발명해 체계적인 우주선 연구를 가능하게 했으며, 폴 디랙은 ‘바다 이론’을 통해 전자와 양전자가 같이 생겨나는 현상인 쌍생성을 설명했다. 제임스 채드윅은 ‘디랙의 바다’에서 중성자를 발견했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한 1932년은 핵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시작된 해”이다.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코펜하겐 해석’이 나온 ‘닐스 보어 연구소’,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교환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하이젠베르크를 넘어 ‘마요라나의 교환 힘’을 제안한 에토레 마요라나…. 무수히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서사가 이 책에 펼쳐진다.
이론물리학자인 저자 김현철 인하대 교수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책에 담지 않은 ‘에필로그’에서 이 책의 참다운 의미를 깨우칠 수 있었다. “신화와 미신과 주술의 땅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찾아 끝이 없는 길을 떠난 (…) 절대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을 용기와 반드시 진리를 알아내겠다는 열망만이 있었”던 그들, “한 세대가 스러지고 나면, 그 다음 세대가 (…) 그리고 또 다음 세대가, 그리고 또 다음 세대가 끝나지 않을 길을 걸어갔다.” “물리학자들은 오직 알아야 하겠다는 열망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열었다.”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베크렐과 퀴리 등 학자들은 이른 나이에 장애를 얻고 세상을 떠났으며 과학의 비밀을 캐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 이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 책에 가득한 앎을 향한 도전과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열망,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 신비로운 물리학의 세계가 독자들을 강력히 자극할 것이다. 이론물리학을 다룬 여느 교양서에 견줘 이론 부분이 훨씬 쉽게 설명되어 있으며, ‘쪼끔’ 어려운 내용에 매달리지 않아도 여러 과학자들의 발견과 업적들의 재미있는 뒷이야기 덕분에 책은 매끄럽게 읽힌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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