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읽다: 겸하여 나의 추억과 생각을 담아서
정명환 지음/현대문학·1만5800원
구순의 불문학자 정명환(사진·92) 서울대 명예교수가 ‘깜짝 고백’을 했다. 자신이 평생 프랑스문학을 가르쳤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저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어느 정도나마 해소하지 않고서는 자괴감 때문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뒤늦게 프루스트 소설 읽기에 도전했다. 그는 2016년 초부터 이 방대한 소설을 읽기 시작해 5년에 걸쳐 완독했으며, 읽는 틈틈이 프루스트의 소설 문장들이 촉발시킨 자신의 추억과 사유를 180개의 단상으로 적어 내려갔다. <프루스트를 읽다>가 그렇게 해서 나왔다.
“한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감성과 지성, 관찰력과 상상력, 분석력과 구성력을 함께 갖출 수 있단 말인가!”
지은이는 프루스트의 재능과 성취에 감탄하고 그의 소설에 공감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단상 첫 편에서 어린 소설 화자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눈물을 비치고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역시 눈물을 참았으리라는 대목을 언급하며 지은이는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아들의 제안에 “내가 살아 있는 한 제사는 꼭 지내겠다”고 결연하게 말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정 교수는 이렇게 쓴다. “그날 밤, 어머니는 애지중지 길러놓은 자식에게 결국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는 말할 수 없는 섭섭함에 남모를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프루스트 소설과 정 교수 자신의 삶이 포개지는 장면이다.
전체 12권 가운데 1권 읽기를 마치고서 정 교수는 묘사와 복선 그리고 ‘개별성 속의 보편성’을 이 작품의 매력으로 꼽는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이렇게도 매력적인 소설이 달리 또 있을까!”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프루스트의 모든 것에 동의하고 호응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부잣집 도련님’으로서 프루스트가 드러내는 한계를 정 교수는 단호하게 비판한다. “프루스트의 인생 체험은 답답할 정도로 편협하다”,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성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실존적, 사회적 문제 제기가 결핍된 이 대하소설은 나의 취향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이어지던 비판은 프루스트가 “부유한 상류계급에 속하는 병자이며, 또한 철저한 자폐적 자기중심주의자였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비록 마지막 단상이 프루스트의 문체·예술론에 대한 동조이기는 하지만, 12권 전체를 통독한 노 교수의 판단은 프루스트 소설에 대한 지지보다는 비판 쪽에 더 무게가 쏠려 있는 느낌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현대문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