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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제는 고기가 아니야

등록 2021-07-09 05:00수정 2021-07-09 09:42

채식주의 연구결과 허점 비판에 무조건 찬성 어렵지만
‘어떻게’ 먹을까 논의에서 채식-육식 공존 모색할 수 있어

신성한 소: 채식의 불편한 진실과 육식의 재발견
다이애나 로저스·롭 울프 지음, 황선영 옮김/더난출판사·1만7000원

‘신성한 소: (특히 부당하게) 그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생각이나 관습, 제도.’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의 믿음에 빗댄 이 표현에 대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뜻풀이다. ‘신성한 소’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다양한 생각이 나오겠지만 한참 떠오르고 있는 채식주의를 꼽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공장형 축산업이 가속시키는 온실가스 문제와 동물권 등을 생각하면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은 귀기울여야 하지만 육식을 불타는 지구에 휘발유를 붓는 행위나 피도 눈물도 없는 동물학살로 몰아가는 극단주의자를 만날 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지구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비건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채식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sk@hani.co.kr
지난해 ‘지구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비건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채식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sk@hani.co.kr

<신성한 소>는 채식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신성한 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전제하에 영양과 환경, 윤리적인 측면에서 과연 육식, 특히 적색육(쇠고기)이 정말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가 반문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원으로 사랑받던 쇠고기가 이제는 고혈압 등 각종 현대인의 병의 원흉으로 지목될 뿐 아니라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건 부당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식량산업이 고도로 정치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육식을 배격하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배양육 산업의 육성 등이 정말 지구를 위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채식주의자들이 내놓는 연구결과들이 얼마나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는지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한 예로 채식을 했을 때 건강상태가 호전됐다는 데이터를 보여주는 조사들의 경우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화학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 섭취도 함께 줄이는 경향이 있는데 연구결과는 이를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내놓는 연구결과와 데이터들은 상당 부분 논쟁적으로 보인다. 채식주의가 주장하는 바와 이 책이 반박하는 지점은 거울상처럼 반대되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는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눈여겨볼 지점도 꽤 많은데 그중 하나는 육식과 채식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면서 정작 지구의 미래에 독이 되는 오늘날의 식량 시스템 문제는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옥수수, 밀, 콩 등 대규모 기업형 단일작물 농업은 지구의 표토층을 황폐화한다. 또 채식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견과류인 아몬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량 생산하는데 건조한 기후에서 아몬드 나무에 물을 대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용수를 인위적으로 끌어온다. 이는 이미 현실로 다가온 지구 물부족 현상을 가속시킨다. 옥수수 재배에 들이붓다시피 하는 제초제와 살충제는 고스란히 지하수로 들어간다.

저자는 축산업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배양육 산업 역시 결국 수많은 기술의 특허권 경쟁으로 귀결돼 극소수 사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런 신기술에 몰두하기보다는 공장식 축산업과 기업형 단일작물 농업을 줄이고 소규모 농장주들이 목초 사육을 할 수 있는 재생농업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료용 옥수수밭을 없애고 그 자리에서 소들이 풀을 뜯으면 황폐화된 땅이 되살아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된다. 지역 중심의 소규모 농업을 키우고 로컬 마켓을 활성화하자거나 소규모라도 식량생산에 직접 참여하자는 책의 주장은 채식주의의 주장과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을’ 먹을까는 다를 수 있지만 ‘어떻게’ 먹을까라는 논의에서 채식과 육식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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