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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심 속 교통섬에 갇힌 남자의 운명은?

등록 2021-07-23 08:59수정 2021-07-23 09:40

콘크리트의 섬 J. G.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현대문학·1만4000원
콘크리트의 섬 J. G.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현대문학·1만4000원

콘크리트의 섬J. G.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현대문학/1만4000원

영국 작가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1930~2009)의 소설 <콘크리트의 섬>(1974)은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의 현대 도시 버전으로 일컬어진다. 주인공인 메이틀랜드가 “로빈슨 크루소처럼 홀로 남았구나”라고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메이틀랜드는 런던 중심부 웨스트웨이 입체교차로의 고속 출구 차선으로 차를 몰아 달리다가 가드레일을 뚫고 30미터 아래 경사면으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가 착륙한 곳은 일종의 교통섬. “세 갈래 고속도로가 모이는 교차점의 황무지에 저절로 생겨난, 약 200미터 길이의 얼추 삼각형 형태인 땅 조각이었다.” 메이틀랜드에게는 이곳이 크루소의 무인도가 된다.

이곳은 물론 망망대해의 외딴 섬과는 다르다. 수많은 차량들이 눈앞을 쌩쌩 내달리고 런던 시가지가 가까이 보이는, 도시의 일부다. 그러나 높은 경사면과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이 공간에서 몇 차례 탈출 시도를 해 보다가 부상만 입은 채 실패하자 메이틀랜드는 자신을 무인도의 크루소와 같은 처지로 간주하고, 제가 있는 땅을 ‘섬’이라 부른다. 아예 “나는 섬이로다”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도시의 교통섬. 게이티미지뱅크
도시의 교통섬. 게이티미지뱅크

처음에 메이틀랜드는 교통섬에 갇힌 사람이 저 혼자라고 믿지만, 소설이 절반 가까이 진행되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 곡예를 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해 지능이 떨어진 거구의 부랑인 프록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 제인 셰퍼드가 이 섬에 먼저 들어와 살고 있었던 것. 제인은 밤이 되면 요란한 옷으로 갈아입고 섬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곤 하는데, 자신을 바깥 사회로 데려다주거나 경찰이나 가족에게 전화 연락을 해 달라는 메이틀랜드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제인은 아베 고보 소설 <모래의 여자>나 스티븐 킹 소설 <미저리>의 여주인공들을 닮았다. 그런가 하면 도시 한가운데의 표류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영화 <김씨 표류기>를 떠오르게도 한다.

물론 <콘크리트의 섬>은 다른 무엇보다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의 발전적 변용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거대하고 단순한 짐승의 자연스러운 위엄”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 프록터는 크루소의 프라이데이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도심 속 표류를 다룬 이 소설은 현대 문명과 인간관계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내장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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