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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회적 약자들을 ‘풀어먹이는’, 따뜻한 뒷전의 세계

등록 2021-07-23 08:59수정 2021-07-23 09:29

뒷전의 주인공: 굿의 마지막 거리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들 황루시 지음/지식의날개·1만7000원
뒷전의 주인공: 굿의 마지막 거리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들 황루시 지음/지식의날개·1만7000원

뒷전의 주인공굿의 마지막 거리에서만난 사회적 약자들
황루시 지음/지식의날개·1만7000원

흔히 ‘뒷전’이란 말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나중으로 미뤄놓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무속에서도 뒷전은 무당이 가장 마지막에 하는 굿을 가리킨다. 몇날 며칠에 걸쳐 신앙하는 여러 신들을 모두 대접한 뒤, 철상을 하고 밖으로 나와 떠도는 잡귀와 잡신들을 ‘풀어먹이는’ 의식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의식이라서 뒷전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무속 세계에서는 되레 “아무리 굿을 잘해도 잡귀들을 제대로 풀어먹이지 못하면 효험이 없다”는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민속학자 황루시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는 새 책 <뒷전의 주인공>에서 우리 무속에서 뒷전의 실질적인 모습이 어떤지, 왜 발달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그는 뒷전이 “우리 삶에서 소외되었던 작은 존재들을 대접하는 굿”이며,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속의 핵심이라 평가한다. 잡귀와 잡신은 굿판에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한 존재로, 영산(요절하거나 횡사한 귀신), 객귀(집을 떠나 밖에서 죽은 귀신), 수비(주신을 따라다니는 귀신)를 아우른다. 이들은 주요 신들과 달리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과 기능이 없고, 인간이 소원을 비는 대상이 아니라는 특징을 지닌다.

포항 계원 별신굿에서 아기 낳는 흉내를 내는 양중(남자 무당) 김장길의 모습. ⓒ윤동환. 지식의날개 제공
포항 계원 별신굿에서 아기 낳는 흉내를 내는 양중(남자 무당) 김장길의 모습. ⓒ윤동환. 지식의날개 제공

뒷전은 연극과 비슷한 형태로 우스꽝스럽게 펼쳐지는데, 무당은 기바리·천상바라기·안팎곱사등이 등 장애인, 골매기할매·해산·모진 시집살이에 자살한 며느리 등 여성의 모습을 재현하곤 한다. 동해안 별신굿에서는 전쟁에서 전사한 병정 귀신이, 순천 삼설양굿에서는 여순사건 때 총 맞아 죽은 귀신 등이 등장한다. 전라도 삼설양굿에서는 사회에서 천대받는 떠돌이 노래패가 뒷전에 등장하기도 한다. “오너라 청하면 고마워서 오고 오지 말라면 밉살맞아서도 오는” 존재들인 이들은, 뒷전에서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며 위로를 받고 돌아간다.

황해도 대동굿의 마당굿에서 탈을 쓰고 노는 무녀들의 모습. ⓒ김수남. 지식의날개 제공
황해도 대동굿의 마당굿에서 탈을 쓰고 노는 무녀들의 모습. ⓒ김수남. 지식의날개 제공

지은이는 뒷전의 인물들을 장애인, 여성, 동시대의 소외된 서민 등 3부류로 나눠보고, “뒷전은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위로하는 굿”이라고 풀이한다. 연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소외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들을 기억하고 역사로 끌어안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 이 같은 뒷전의 세계로부터, 힘없는 존재를 보듬고 소외된 존재와 화해하는 무속의 세계관을 읽어낸다. 몰입하는 관중들 역시 웃음의 대상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자신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뒷전은 죽은 자의 한을 풀면서 동시에 산 자를 위로하는 굿”이라고도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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