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버스에 올랐습니다. 청량리, 제기동 지나면 청계8가, 7가, 6가 거쳐, 숫자가 작아져 갑니다. 높은 곳에 길게 뻗은 청계고가 아래로 버스는 굴러갑니다. 황학동 가는 길입니다. 빈 배낭 짊어진 버스 안에서 흔들리다 보면 창밖 세상도 덜컹거렸습니다. 애들은 가라~ 약장수 옆 인파를 헤치고 좁디좁은 헌책방 즐비한 거리로 나섭니다. 오래된 책 냄새 고인 어둑한 가게에 쭈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책무더기를 들춥니다. 이내 묵은 책들이 배낭을 채우고 돌아가는 버스간은 충만해집니다. 리영희, 신영복, 함석헌, 백낙청, 조동일, 김윤식, 김현, 정현종, 마종기, 최인훈, 박상륭…을 그렇게 그 길에서 만났습니다.
책은 기록입니다. 수천년 인류 역사의 경이로운 흔적들입니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지혜와 통찰을, 기쁨과 감동을, 위로와 설렘을 줍니다. 독서는 여행이며 탐험이고, 쉼이기도 성찰이기도 유흥이기도 합니다. 책은 그 자체로 문화이고 예술입니다. 책은 나와 너를 연결하고 우리를 구성합니다. 책을 빼놓고는 인류와 역사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책은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책은 세계를 연결하고 움직여온 미디어입니다.
우리와 함께 깊어져온 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앞가림도 못하는 ‘신문쟁이’가 비관적 전망에 걱정하고 있을 때, 괴산 미루마을에서, 제주 애월에서, 속초 동명동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동네책방들이 새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책 너머의 책들이 소담하게 꽃 피우는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친 마음 달래는 날들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동네책방을 꾸려가는 분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경이로운 흔적들을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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