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현대사
우리의 오늘을 만든 작고도 거대한 36가지 장면들
김태권 외 지음 l 한겨레출판 l 2만원
87항쟁, 외환위기, 촛불시위 같은 ‘현대사’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관통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사회 구성원으로 하루하루, 일년, 수십년을 살아간다. 치킨을 시켜먹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탈모를 고민하면서 보내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 시간도 축적되면 역사가 된다. <사소한 것들의 현대사>는 이처럼 어쩐지 역사책에 등장하기는 쑥스러울 것 같은 소재들도 우리의 지난 30년을 채우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알려주는 현대 미시사다.
1988년 창간 이후 신문의 가장 큰 범주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한겨레>에 많이 등장했던 열쇳말들을 목차로 삼아 당시의 기사들을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책의 맨 앞을 채우는 건 70~80년대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 손에 들려 있던 “누런 봉투”의 통닭이 어떻게 2000년대 들어 ‘치킨’이라는 영어 이름의 인기 많은 배달음식이 되었는지, 동네마다 여러 개가 있는 치킨집들은 왜 그렇게 치열한 경쟁에 놓이게 됐는지, 그리고 ‘세계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치킨 식문화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기술한다. 소소한 일상사만은 아니다. 생리대 광고와 화장품 광고의 변천사는 여성 인권의 변화라는 맥락 속에서 해설되어 있다.
강남 아파트 변천사를 다루는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2003년 경제 기사는 강남아파트 가격 상승 이유로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감” “교육여건” 등을 꼽고 있어 지금의 부동산 기사를 읽는 듯한 기시감마저 든다. 이밖에 정치 부문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노회찬 등 이제는 세상을 떠난 정치인들의 현역 시절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사진 기자들이 찍은 풍부한 현장사진은 읽는 즐거움 못지 않게 보는 재미를 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