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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유’라는 열쇳말로 엮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유

등록 2021-08-06 05:00수정 2021-08-06 09:35

헤겔 권위자 안드레아스 아른트
기존 헤겔-마르크스주의 벗어나
‘자유의 역사’로 본 공통점 탐구
특수성-보편성 모순 해소가 핵심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

안드레아스 아른트 지음, 한상원 옮김 l 에디투스 l 1만8000원

1806년 10월13일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황제가, 이 ‘세계혼’이 말을 타고 도시를 통과하는 것을 보았네.” 이 독일 철학자는 나폴레옹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는 그의 정복이 유럽에 남아 있던 봉건적 제도들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법(권리)을 확산시켰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동안 헤겔 철학에 대해 전체와 보편을 위해 개별과 특수를 희생시키는 전체주의,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주의 철학이라는 혐의가 제기되곤 했다. 그러나 국제헤겔학회 대표를 맡는 등 헤겔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독일 철학자 안드레아스 아른트(72)는 2015년 펴낸 책 <역사와 자유의식>을 이 에피소드로 시작하며, “헤겔에게 세계사는 자유의식에서의 진보”이고 “헤겔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한발 더 나아가 지은이는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야말로 헤겔과 카를 마르크스(1818~1883) 사이의 강한 결합을 만드는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죄르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을 의식해 지은 책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지은이는 헤겔과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기보다는 둘을 ‘자유’라는 개념으로 결합시키는 새로운 헤겔-마르크스주의를 제안한다.

지은이는 헤겔이 자유의 역사를 본질적으로 법(권리)의 역사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헤겔의 근본적인 통찰은 법이 자유의 공간을 최대한 구성하며, 심지어 자연법적인 규정들은 자유의 역사의 결과라는 것이다.” 헤겔이 말한 자유는, 개별자들이 이기적으로 전개하여 법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인 힘으로 어떤 자유의 상태를 만들었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개인적인 자유, 곧 특수성의 권리는 법적 상태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의식이 진보해온 세계사의 결과물이다. “자유는 역사적 귀결이지 자연상태에서의 역사의 전제가 아니다.”

가족과 국가 사이에 인격적 자유가 구현되는 특수성의 영역, 곧 시민사회가 등장한 것은 현대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헤겔이 고민했던 하나의 중요한 모순이 부각된다. 개인이 자신의 인격적 자유를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 만들어진 것은 ‘자유의 역사’가 진보해온 성과지만, 실제로 시민사회는 이러한 자유를 모든 개인에게 보장할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사유재산의 소유자만이 자기 이익 속에서 행위할 수 있는 ‘욕구의 체계’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한편으로 모두가 자신의 생활필수품을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기를 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를 보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헤겔은 시민사회의 성과를 폐지하지 않은 채, 인륜성, 곧 정치적 공동체가 어떻게 욕구의 체계인 자본주의 경제를 이겨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국가가 여기에 규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품었다.

지은이는 마르크스 역시 헤겔이 직면했던 모순을 이해했으며, 더 나아간 사유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헤겔에 따르면, 특수성의 영역인 시민사회 영역 안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특수성의 틀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것은 자유의 추상적인 보편성, 곧 ‘소유의 권리’다. 국가가 개입하는 인륜적 공동체의 가능성도 오직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적 소유의 권리는 단지 가상적인 것일 뿐이며, 본질적으로 시민사회 자체의 이런 법적 측면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금과 노동력의 교환은 형식적으로는 정당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의 토대인 노동자의 무소유”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한 노동을 팔 뿐 그 가치를 진정으로 소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유의 권리를 진정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법적 체계는 이것을 마치 자유롭고 평등한 등가교환인 것처럼 현상할 뿐이다.

독일 화가인 나데르 아흐리만의 그림 ‘헤겔기계, 세계혼을 만나다’. 1806년 헤겔이 독일 예나에서 나폴레옹을 본 장면을 상상해 그린 삽화(1895, 위쪽)의 패러디로, 나폴레옹이 백마가 아닌 흑마를 타고 있으며 승전의 장소인 예나가 아닌 패배를 맛본 러시아 설원 위에서 헤겔이 아닌 ‘헤겔기계’를 바라보고 있다. 에디투스 제공
독일 화가인 나데르 아흐리만의 그림 ‘헤겔기계, 세계혼을 만나다’. 1806년 헤겔이 독일 예나에서 나폴레옹을 본 장면을 상상해 그린 삽화(1895, 위쪽)의 패러디로, 나폴레옹이 백마가 아닌 흑마를 타고 있으며 승전의 장소인 예나가 아닌 패배를 맛본 러시아 설원 위에서 헤겔이 아닌 ‘헤겔기계’를 바라보고 있다. 에디투스 제공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별자의 인격적인 자기 결정을 위한 자유의 공간이 있느냐다. 마르크스는 “빈곤과 부가 법의 손상으로 인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법 자체가 아니라 “기존의 자유 개념이 너무나 빈약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르크스는 “‘필연의 왕국’을 넘어서야 스스로를 자기 목적으로 간주하는 인간적 힘의 발전, 곧 참된 ‘자유의 왕국’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마르크스가 “자유의 왕국은 오로지 자신의 토대인 필연의 왕국 위에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본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치 헤겔이 시민사회의 성과 위에서 ‘욕구의 체계’를 통제할 정치적 공동체(인륜성)를 고민했던 것처럼,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의 토대 위에서의 개인적 소유, 즉 토지 그리고 노동 자체를 통해 생산된 생산수단에 대한 협업과 공동점유”(<자본론>)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은 필연의 왕국을 기만적인 교환가치가 아닌 진정한 생산가치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정치적 틀로 이해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헤겔기계’를 폐기하고 새롭게 ‘역사적 유물론’을 내세웠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것은 기껏 헤겔기계가 현상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 정작 마르크스 안에 담긴 헤겔의 핵심 유산은 자유의 역사에 대한 관점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와 헤겔은 개인적 자유를 사회적 해방의 불가피한 요소로 만드는, 자유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서로 마주친다.” 또 개인이 타자와의 관계와 타자에 의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건너뛴다면, 이른바 “순결주의 정파와 순수 혁명적 학설”처럼 “개인들에게 완전히 투명한, 소외되지 않은 사회적 세계라는 낭만주의에 의존”하게 될 뿐이라고 비판한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를 그 비판 대상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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