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린 대불호텔과 사람들
이야기에 빠져드는 소설가
원한과 저주는 파국 치닫지만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에 빠져드는 소설가
원한과 저주는 파국 치닫지만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강화길 지음 l 문학동네 l 1만4000원 소설가는 뭔가에 씐 이들이다. 이야기에, 실은 이야기를 지닌 존재들에. 거기엔 거개 작가적 자의식이 자리하고 있을 텐데, 계속 이야기하기 위해 내면에서 작동하는 자의식은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것이다. 듣는 이와 말하는 이들로 분열되고 때로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뒤섞이면서. 소설가 강화길(사진)의 두번째 장편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의 자의식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마치 유령의 집을 걷고 있는 것처럼.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인물들은 악령인지 아닌지, 실상인지 허상인지 어느 순간 헷갈려 버린다. 하나의 사실을 지시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현실과 내면, 실재와 환상을 뒤섞어 독특한 효과를 자아낸다.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 속에 새로운 이야기가 감춰져 있으며, 이야기 위에 다른 이야기가 얹히며 독특한 불안과 공포의 정서를 구축해나간다. 이 작품은 두명의 소설가가 이야기의 바깥과 주변부에서 이야기를 형성하고 이끌어간다. 화자인 소설가 ‘나’와 귀신 들린 집 이야기를 쓰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미국인 소설가. 소설가인 ‘나’는 악령에 씐 적이 있다. ‘니꼴라 유치원’(강화길은 2016년 단편 ‘니꼴라 유치원 - 귀한 사람’이라는 단편을 발표했다)이라는 작품을 쓸 때 ‘나’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악의에 찬 목소리”에 방해 받았다. 고통스러워 하던 ‘나’는 친구 ‘진’을 통해 알게 된, 국내 첫 서양식 호텔이었던 인천 대불호텔에서 여성의 환영을 보고 난 뒤 이 호텔에 얽힌 이야기에 빠져든다. ‘나’가 끈질기게 파헤치는 대불호텔에서 과거 장기숙박을 했던 미국인 소설가의 이름은 ‘셜리 잭슨’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을 지은 현대 고딕 호러 문학의 선구자 셜리 잭슨(1916~1965)을 그대로 작품에 불러왔다. 힐 하우스처럼 귀신 들린 대불호텔을 통해 고딕 문학의 문법을 형상화한 셈이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강화길이 셜리 잭슨과 <힐 하우스의 유령>에 헌정하는 작품이라 할 만한데, 제목이 유사할뿐더러 ‘대불호텔’은 악령(devil)을 떠올리게 한다. 1950년대 대불호텔에는 소외된 이들의 ‘한’(恨)이 가득하여 음산하고 악령의 소행으로 묘사되는 환각과 공포가 만연하다. 대불호텔에 얽힌 주요 인물은 셜리 잭슨을 포함해 네명이다. “귀신이 붙었다고. 드센 팔자라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고연주’는 마녀처럼 그려진다. “그녀에게 들러붙은 귀신은 그녀를 해치려 한 이들의 목뼈를 부러뜨렸다. (…) 누구도 그녀를 내쫓지 못했고, 그녀를 쫓아오지도 않았다.” 고연주는 식민과 전쟁을 겪은 이 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가능한 열망을 품고 대불호텔을 운영한다. 호텔 일을 돕는 ‘지영현’은 좌우 대립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고향에서 도망쳐 나왔다. 셜리 잭슨과 내밀하게 소통하는 고연주에게 지영현은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을 괴롭혀온 상황과 사람들에게 복수하듯, 급기야 원한을 터뜨린다. 호텔 식당에서 일하는 ‘뢰이한’은 주요 인물 중 유일한 남성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박해받는 화교다. 가족들은 이미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그는 끈질기게 남아 대불호텔과 함께한다. 셜리 잭슨과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 등 주요 인물들은 모두 원한을 품은 이들이다. 실제로 셜리 잭슨은 어머니에게 ‘실패한 피임의 산물’이라는 폭언을 수시로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모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셜리 잭슨은 성인이 된 뒤로도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못했다. 셜리 잭슨의 남편이 외도를 일삼고 아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것처럼 소설에서도 남편은 셜리 잭슨을 호텔에 던져두고 사라진다. 스무살에 호텔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고연주는 어릴 적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면서 (…) 식구들과 헤어졌다.” “무력하고, 서럽고, 외톨이였”으나 급기야 “그 모든 희망이 다 부서지게 된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 수는 없었다. 지영현도 뢰이한도 모두 무력한 고아이며 박해받는 외톨이이다. 이들 모두는 이념 대립에서 비롯한 증오, 가까스로 삶을 버텨내려는 여성에 대한 세상의 적개심, 이주자를 향한 혐오의 희생자다. 이들은 대불호텔과 함께 모두 서로에 대한 원한과 악령이 출몰하는 환영에 휩싸여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파국이 끝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들이 도달한 파국과 뒷이야기를 모두 파악한 ‘나’는 악령을 떨쳐내고 ‘니꼴라 유치원’을 완성한다. 이번 작품으로 작가 강화길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2016)과 첫 장편 <다른 사람>(2017), 두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2020)가 여성이 마주쳐야 하는 일상적인 폭력을 조명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부각시켰다면, <대불호텔의 유령>은 폭력과 억압의 밑바닥에 깔린 피해자들의 정서를 파헤쳐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 시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지나간 시간, 역사,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으로 남아 건물 자체가 된 목소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의 목소리.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원한을 사랑으로 바꾸는 삶으로 걸어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의 목소리.”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그들은 안다. 언제 어디에 있든, 빛은 이렇게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배신감과 미움, 질투와 실망, 그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첫 문장을 쓰지 못하던, 기껏해야 “그 가짜들을 휘갈겨 대기나” 하던 데서 진일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완성의 이야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원한을 사랑으로 바꾸는’, 즉 완성으로 이끄는 이야기로 나아간 셈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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