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l 열린책들 l 1만2800원 2018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인 시그리드 누네즈(사진)의 소설 <친구>는 여러 겹의 층위를 지니고 있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혼자 사는 여성 작가가 어느 날 대형견을 떠맡게 된다. 그의 스승이자 한때 연인이었으며 그 뒤로는 평생을 미묘한 친구 관계로 지내 온 남성 작가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면서 남긴 반려견 ‘아폴로’다. 아파트에서는 개를 기를 수 없다는 계약 조건 때문에 망설였지만, 결국 개와 함께 지내게 된 주인공이 남성 작가를 상대로 편지를 쓰듯 말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번역판으로 250쪽에 못 미치는 짧은 분량이지만, 소설 안에는 다양한 맥락과 쟁점이 담겼다. 남성 작가는 창작 에너지와 분방한 성생활을 동일시한다. “학과의 최연소 교수로, 학과의 재원이자 로미오”였던 그는 “훌륭한 선생은 유혹자”라는 신념을 지녔고, 실제로 첫 번째 부인을 비롯해 숱한 제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늙어서 성적 매력이 예전만 못하게 된 뒤에도 그는 꾸준히 애인을 만들고자 했고, 죽기 얼마 전에 문학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도 “교수와 학생의 연애를 금지하는 새 법규를 힐난”했다. ‘소설 속 소설’에 해당하는 장에서 그는 작가의 인격적 결함이나 단점에 무자비해진 세태를 개탄하며 “소설가가 여느 훌륭한 시민처럼 순응해야 된다”는 주장이나 문학이 “너무도 정치화된” 분위기를 비판한다. ‘백인 제국주의’와 ‘문화적 전유’라는 혐의가 창작의 자유를 억누르는 데에도 절망한다. 주인공의 친구인 ‘전직’ 작가를 통해서는 문학이 예전처럼 사회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상황, 서로를 질시하며 동료 작가를 끌어 내리려 애쓰는 문단 풍토, “다들 돈을 최우선으로 삼는” 태도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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