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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Deus는 天主’ 번역 첫 제시한 ‘동서문명교류’ 문헌

등록 2021-08-13 07:08수정 2021-08-13 09:46

신편천주실록 라틴어본·중국어본 역주
곽문석·김석주·서원모·최정연 번역 및 주해 l 동문연 l 4만8000원

16~17세기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동서문명의 교류를 이끌었는데, 마테오 리치(1552~1610)의 <천주실의>(1603)는 이를 대표하는 저작물이다. <신편천주실록>은 처음으로 “신”(Deus)에 대한 중국어 번역어로 “천주”(天主)를 제시하는 등 <천주실의> 이전에 선교의 초석을 마련한 최초의 중국어 교리교육서로, 초창기 동서문명 교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보여주는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안양대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 소속 연구자들이 이 <신편천주실록>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해한 <신편천주실록 라틴어본·중국어본 역주>를 펴냈다. 이탈리아 로마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라틴어 필사본 <신성한 일들에 대한 진실되고 간략한 설명>과 로마 예수회 고문서 자료실에 소장된 중국어본을 교감하고, 이들을 함께 실었다. 책 들머리에 실린 해제는 이 책이 동서문명교류사에서 갖는 의미와 그동안 진행된 문헌학적 연구의 성과를 잘 설명해준다.

<신편천주실록>을 저술한 미켈레 루제리(1543~1607)는 중국 본토에서 선교를 시작한 최초의 선교사다. 마테오 리치와 함께 <포한사전>을 편찬하고, 중국 고전 <사서>를 라틴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인 이교도 철학자와 그리스도교 사제의 대화 형식으로 이뤄진 <신성한 일들에 대한 진실되고 간략한 설명>을 라틴어로 먼저 썼고, 1584년에는 이를 중국어로 옮긴 <신편천주실록>을 중국에서 발간했다. 이 책은 중국에서 수천부가 출간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라틴어본과 중국어본을 비교해보면, 루제리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자연이성을 부여했다는 생각을 토대로 공자의 가르침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다만 중국어본에서는 공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을 들어내거나, 승(僧), 천축(天竺), 사(寺), 출가(出家) 등 불교 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이는 “심적으로 유교를 긍정했을지라도, 실제 전교 활동에서는 불교의 교리나 관습을 전교의 발판으로 삼는 기존 선교 정책을 고수했음을 짐작케 한다.” 일종의 전략적인 판단이었던 셈이다. 입교 권유를 위해 사후 심판과 처벌에 대한 가르침을 한층 더 강조하고, 세례를 마지막 장에 배치한 점도 두드러진다. 라틴어본에는 오상(五常), 효제(孝悌) 등 중국 전통문화나 사생육도, 윤회설 같은 불교의 기본 교리가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 로마 예수회 고문서 자료실에 소장된 ‘신편천주실록’ 중국어본의 표제지. 동문연 제공
이탈리아 로마 예수회 고문서 자료실에 소장된 ‘신편천주실록’ 중국어본의 표제지. 동문연 제공

‘Deus=天主’ 번역을 제시한 것은 이 책이 후대에 끼친 가장 큰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보유론’(補儒論)이 선교 전략의 대세가 됐고,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신편천주실록>은 거의 잊혔다. 1637년에는 <신편천주실록>을 좀 더 심층적인 교리교육을 위한 방향으로 개역한 <천주성교실록>이 편찬되기도 했다. 라틴어본, 중국어본, 개역본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이 책은 동서문화교류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고 한다.

이번 책은 안양대 인문한국플러스 사업단에서 수행하고 있는 ‘동서교류문헌연구’의 결과물인 총서의 첫 책으로 출간됐다. 이 사업단은 “서양 고대의 그리스어, 라틴어 문헌이 중세 시대에 시리아어, 중세 페르시아어, 아랍어로 어떻게 번역되었고, 이 번역이 한자문화권으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추적 조사하고 있다.” 고대 실크로드 시대, 중세 몽골제국 시대, 근대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활동한 예수회 전교 시대로 나누어 실크로드 여행기, 몽골제국 역사서, 명청시대 예수회 신부들의 저작·번역 등을 연구하고, 그 성과물을 지속적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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