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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이들 차별 없는 세상 꿈꾸며 동학 역사 소설 썼죠”

등록 2021-08-16 18:24수정 2021-08-17 02:35

[짬] 동화작가 이마리씨

최근 <동학소년과 녹두꽃>을 펴낸 이마리 작가. 이마리 작가 제공
최근 <동학소년과 녹두꽃>을 펴낸 이마리 작가. 이마리 작가 제공

“조선 말 암울하고 혼란한 나라에 빛을 비춘 것은 젊은이들의 꼿꼿한 항거 정신입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동학 혁명을 일으켜 외세와 불의에 저항하다 희생한 조선 젊은이들의 정신은 한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죠.”

최근 동학 농민전쟁을 소재로 청소년 역사소설 <동학소년과 녹두꽃>(행복한 나무)을 펴낸 이마리(본명 이정환) 작가의 말이다. 조선 시대에 천대받던 백정의 아들 춘석과 대장장이 딸 홍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학군이 탐관오리와 일본 세력 축출을 위해 관군·일본군과 맞서 싸운 과정을 그렸다. 이 소설은 작가가 올해 초 낸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의 속편이기도 하다. 대장장이가 왜구의 침략을 막을 의도로 만든 명검 ‘궁’을 손에 넣으려는 ‘악당 양반’과 대장장이 딸의 추격전을 통해 조선 말 부패상과 신분제 차별을 드러낸 작품이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사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를 지난 12일 전자우편으로 만났다. 시드니에서 기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센트럴코스트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는 “코로나 봉쇄로 3년째 한국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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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소년과 녹두꽃> 표지.

그는 2013년 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을 받고 동화 작가로 등단했다. 남들은 은퇴를 고려할 50대 후반의 나이였다. 등단작 <버니입 호주 원정대> 등 동화책 6권을 냈고, 이 중 3권은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됐다. 지금은 <동학 소년과 녹두꽃> 후속작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군 이야기를 쓰고 있다. “우금치에서 패하고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동학 소년’의 후손 젊은이가 현대에서 활약하는 시리즈물을 구상하고 있어요.”

작가가 되기 전의 삶을 묻자 그는 “봉사하며 중년을 보냈다”고 받았다. 전주가 고향인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80년 남편과 함께 하와이대학으로 유학을 가 패션을 공부했다. 귀국 뒤 의상실을 열려고 ‘하와이 패션 스쿨’도 다녔단다. “한국에 와서 바로 패션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김대철 부경대 명예교수) 직장이 있는 부산에서 봉사하며 살았어요. 주로 외국인 여성들이 회원인 부산국제여성회(BIWA)에서 이웃돕기 기금 마련 바자를 위해 빵을 굽거나 별것도 아닌 성탄 소품을 만들며 중년을 보냈죠.” 글쓰기가 주업인 지금도 바느질과 빵굽기는 포기 못한단다. “원고 마감 뒤에는 재봉틀에 앉아 며칠 동안 하고 싶은 재봉 작업을 해요. 치아바타, 스콘, 바나나케이크 굽기는 밥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글 쓰는 사이 치아바타 반죽이 부풀고 빵 익는 냄새가 나면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글을 쓰는 데 촉매제이죠. 이런 일상이 모두 예술입니다.”

봉사하며 살다 50대 후반 등단
저서 3권 ‘세종도서 문학나눔’ 뽑혀
최근 ‘동학 소년과 녹두꽃’ 출간
“불의·외세 저항한 젊은이들 정신
한국 미래 위한 소중한 자산이죠”

아이들을 키우며 동화와 추리소설, 영성 서적 등 여러 장르의 책도 번역한 그는 2012년 부산의 한 창작동화 교실에 등록하면서 문학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 때 외교관이나 자선사업가도 하고 싶었지만 작가는 마음속 제일 깊은 곳에 잠재의식으로 자리한 제 꿈이었죠. 번역은 6년을 머문 하와이 유학 시절에 시작했어요. 그때 초등생 아들이 비바람 치던 겨울 새벽에 신문 배달을 했는데,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새벽에 깨어 번역하기 시작했죠.” 여러 장르 중 왜 동화냐고 하자 그는 “소설은 인생의 우울함을 토로하지만, 동화는 쓰는 동안 마음도 밝아지고 해맑은 어린이의 정서도 느낄 수 있어 신이 났다”고 답했다. 해양지질학을 전공한 남편도 그의 권유로 <나, 박테리아야>(2021) 등 두 권의 동화책을 냈다.

조선 말 역사를 다룬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차별 없는 사회에서 행복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았다.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장기체류하면서 제 아이들이 겪은 차별에 가슴 아플 때가 많았어요. 요즘 인종주의와 약육강식이 강해지잖아요. 이럴 때 한국은 물론 재외 한인 청소년들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찾아주고 또 모국어로 자존감을 길러주고 싶은 마음이 늘 가슴 속에 있어요.”

그는 “나라 밖을 돌아다니며” 역사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고 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철이 늦게 들었죠. 어두운 과거를 알아야 스스로 치유되고 힐링할 기회가 있어요. 한국의 감추어진 어두운 역사를 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의욕이 요즘 충만해요.”

역사 소설 집필을 위한 한국사 공부에 어려움은 없냐고 묻자 그는 “마침 시드니의 지인(김춘택 선생)이 방대한 한국 서적을 가지고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로 접하는 의식 있는 똑똑한 젊은이들의 한국사 해설도 참고하죠.”

그는 2년 전부터 한글학교에서 교포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교포 아이들이 한국의 전통 음식이나 유적지 등 한국 문화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김치를 담그거나 3·1절 태극기를 만들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감동합니다. 이런 모습이 어른인 저의 조국에 대한 마른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주었죠. 한국어로 글짓기 할 때 샘솟는 아이들의 창조력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이중언어를 하는 미래의 노벨문학상 후보들이라는 영감을 받아요.”

언제쯤 한국을 찾을 것 같냐고 하자 그는 “제가 사는 곳은 코로나로 활동 범위를 5Km 이내로 제약하고 다른 주로의 진입도 금지하고 있다. 한국 방문도 긴급한 용무 외에는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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