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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빅 벤’은 시계가 아니다

등록 2021-08-20 04:59수정 2021-08-20 10:25

시간을 길들이다

니컬러스 포크스 지음, 조현욱 옮김 l 까치 l 3만3000원

1901년 가을, 조종사 산투스두몽은 10만 프랑이 걸린 도이치 상을 노린 동력 비행 중이었다. 30분 안에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는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수백피트 상공 위 역풍에 맞서며 조종 장치를 다루느라 조끼 안쪽 시계를 꺼내서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열기구에서 시간을 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토로했고 귀금속상이던 친구 카르티에는 그에게 선물을 건넨다. 손목을 눈앞으로 휙 움직이기만 하면 시간을 볼 수 있는 시계였다.

인류는 태양과 별, 달의 움직임을 파악해 생존법을 터득했고 농사에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 점차 정교해진 측정 기술은 더 아름답게, 더 크게를 지향한 시계 미학으로 발전했고 곧이어 소장용 개인 시계까지 탄생시켰다. 카르티에는 조종사 친구를 위해, 예거는 폴로 선수들을 위해, 오메가는 우주 탐험을 위해 용도에 맞는 측정 장치를 고안해냈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시계는 누가, 왜,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시계 전문가인 니컬러스 포크스는 시간을 기록하고 사용해 온 인류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구석기 시대 개코원숭이 종아리뼈에 새겨진 표식, 두바이 쇼핑몰에 재현된 알 자자리의 코끼리 물시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중세 유럽 수탉 시계 등을 소개하고 오늘날 최고라 불리는 명품 브랜드가 명성을 얻게 된 이유, 영국 빅벤은 시계가 아니라 시계탑 안에 있는 가장 큰 종의 이름이라는 사실까지 ‘과학과 예술이 만나 완성된 장치’와 인류 역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흥미롭게 담았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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