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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거리] 시나브로

등록 2021-08-20 05:00수정 2021-08-20 09:18

한낮 매미소리는 시나브로 사그라듭니다. 늦은 밤, 이른 새벽 귀뚜라미 울음이 창을 타고 넘어듭니다. 공기 냄새는 청량해졌습니다. 하늘도 조금 높아진 것만 같습니다. 닭장 같은 아파트 베란다 창문일지언정 활짝 열어젖힙니다. “피할 수 없이 가을이 온다는 얘기다”라는 김명인 선생의 문장을 소셜미디어에서 읽었습니다. 정말, 커피 맛이 “갑자기 깊어졌”더군요. 가을 오는 일의 불가피성이 기쁩니다.

‘불가피’는 달갑지 않은 일이 많습니다. 뉴스 제목들을 보세요. 타격 불가피, 혼란 불가피, 인상 불가피, 연장 불가피, 부족 불가피, 제재 불가피…. 주체와 객체와 대상, 주어와 목적어 등을 분류해보면 확실히 강자의 언어입니다.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은 수동적 존재들입니다. 비겁한 변명에 불가피라는 거죽을 씌웁니다. 협잡의 냄새를 가립니다.

불광문고 영업중단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사반세기를 지내온 ‘영혼의 충전소’가 사라졌습니다. 한 곳 두 곳 문을 닫아갑니다 . 방전된 영혼들이 찾아들 곳은 줄어들어 갑니다. 지역 서점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는 불가피한 것일까요. 책 기자는 매주 이 책 저 책을 읽어가며 때때로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오곤 합니다. 이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세상이 아주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가을 오기는 불가피하지만, 그래서 다행이지만, 바라는 만큼 오래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제 왔나 모르게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지난봄이 그렇게 떠나간 것을 기억합니다. 번개처럼 왔다 가버릴 가을을 위해 영혼을 가득 충전해두세요. 시나브로, 피할 수 없이 겨울이 온다는 말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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