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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백암 선생은 세계인이었고 그의 역사서는 세계사였죠”

등록 2021-08-25 20:58수정 2021-08-26 02:34

노관범 서울대 부교수 ‘박은식 평전’
백암 전공 역사학자가 쓴 첫 평전
“유학으로 근대 체험·사유한 사학자”
노관범 교수.
노관범 교수.

“백암 박은식(1859~1925) 선생은 민족주의 사학자로 불리지만, 실제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 보편적 인류라는 넓은 정체성을 보였어요. 여기에는 선생이 국가나 지역에 매몰되지 않는 보편주의를 갖는 유학을 공부한 영향이 클 겁니다. 백암은 전 근대 유학을 가지고 근대를 체험하고 사유한 분이죠.”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백암 박은식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부교수는 최근 <백암 박은식 평전>(도서출판 이조)을 냈다. 역사학자가 쓴 첫 박은식 평전이다.

한말 유학자 백암은 국망의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기에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언론인으로 구국의 필봉을 휘둘렀다. 경술국치 이듬해 서간도로 망명해 중국에서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책을 저술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망명 중 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대표 저술인 <한국통사>(1915)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를 썼고 1925년에는 탄핵당한 이승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이어 2대 대통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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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 평전> 표지.

이번 평전 부제는 ‘유학자 겸곡 박은식’이다. “원래는 책 이름을 ‘겸곡 박은식 평전’으로 하려고 했어요. 지금껏 나온 백암 평전을 보면 조선말 유학자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부분 대한제국기 사회운동이나 국망기 독립운동가 모습만 다뤘거든요. 백암은 망명 이후 뒤늦게 쓴 호이죠. 겸곡은 1890년대 초부터 사용했고요.” 이처럼 저자는 백암이 마흔 나이에 선교사가 쓴 신서적을 읽고 ‘교육 자강 운동’으로 나아가기 이전 유학자 생애도 비중 있게 다뤘다.

책의 다른 특징은 백암 저술을 단편적으로 다루지 않고, 박은식 독립운동 궤적과 전체 저작의 틀 안에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백암 생각은 5년의 시차가 있는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다르게 서술된다. “<한국통사>에서는 동학혁명 사상을 인정하면서도 ‘국가도 같이 끌고가야 한다’는 관념이 동학에 부족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5년 뒤 저술에선 동학을 진정한 의미에서 평민 혁명이라고 평가해요. 손병희(동학 3대 교주)가 이끈 3·1운동에서 천도교(동학을 계승 발전한 종교)의 힘을 봤기 때문이죠.”

노 교수 생각에 “박은식은 세계인이었고 그의 역사서는 세계사였다.” 왜? “한국 독립운동 역사를 정리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갓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쓴 책입니다. 백암은 여기서 1차 대전(1914~18)을 군국주의와 인도주의 세력 대결로 볼 수 있다며 종전 뒤 인도주의 관점에서 많은 나라가 독립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군국주의가 짓누르고 있다고 써요. 인도주의 관점에서 한국 독립을 이야기했죠.”

그는 석사 과정 때 한말 충청도 유학자 송병선을 주제로 논문을 쓰려다 “유학자이면서 대한제국 중심 사상가를 다루는 게 좋겠다”는 지도교수 권유로 ‘백암과 위암 장지연(1864~1921) 자강사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을사늑약 체결에 ‘시일야방성대곡’이란 글로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을 규탄했던 위암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백암과 달리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무엇이 둘의 행로를 갈랐을까? “대한제국기에 두 사람 모두 한일간 국력 차가 너무 커 한국이 먼저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1905년 위암은 대한제국 관리들과 함께 방일해 일본 신문물을 직접 체험합니다. 그 뒤로 한국이 강해지려면 일본과 함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매체인 <해조신문>에서 일하며 겪은 교민사회의 분열상도 영향을 미쳤죠. 반면 박은식은 대한제국기부터 중국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해요. 중국과 일본 세력의 균형으로 한국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죠. 임정 대통령 퇴임사에서도 지금은 인류 역사에서 세계주의를 향해 진전하는 단계라며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연합해 행동할 것을 강조합니다. 캉유웨이(중국 사상가·정치가)가 서문을 썼고 중국인들이 많이 본 <한국통사>도 ‘한중 연대에 입각한 한국과 중국의 역사책’이라고 봐도 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노관범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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