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밥이 가끔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학교가 파한 뒤 여기저기 해찰부리다 집에 오면,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죠. 여름날 시원한 마루에 앉아 보리차에 만 밥술 위에 할머니는 반찬을 얹어주었습니다. 훗날 오차즈케를 알고 나서는, 해방 직전 10년 남짓 오사카에서 살았던 할머니의 젊은 날을 가늠해보곤 했습니다. 보리차를 할머니는 오차라고 불렀습니다.
만화 <심야식당>(미우)에는 ‘오차즈케 시스터즈’가 나옵니다. 코스즈씨나 마릴린 마츠시마, 겐자키 류 등도 단골입니다. 보잘것없는 이들이 밤마다 몰려드는 훈훈하고 쓸쓸한 한밤의 식당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보리차밥을 떠올리고, 문어 비엔나 소시지, ‘어제의 카레’, 명란구이, 구운 김 등 별것 아닌 것 같은, 마스터의 음식에 침을 삼키게 되죠. 맥주나 청주, 아니면 위스키 한 잔이라도 기필코 비우게 만들고 맙니다.
빵집 주인은 졸지에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에게 계피롤빵을 내옵니다. 갓 구운 빵 옆에는 버터를 준비하죠. 그리고 곁에서 기다립니다. 접시에 놓은 롤빵을 집어들기까지. 몇분 전까지도 주인과 부부는 서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부부는 귀 기울입니다. 외로움에 대해, 중년을 지나며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문학동네)에 실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붙들어 둔 건 무엇이었을까요?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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