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권력
전쟁과 권력, 그리고 지각의 상태
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최성희·김지영 옮김 l 갈무리 l 2만2000원
지난달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며,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꼽히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막을 내렸다. 장장 20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의 시작점은 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가해진 ‘9·11 테러’였다. 이 전쟁의 본질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그것은 ‘선제성’이다.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위협이 완전히 가시화되길 기다린다면,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린 것일 겁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드러나기 전에 적에게 싸움을 걸어 그의 계획을 붕괴시키고 가장 나쁜 위협에 맞서야 합니다.”
캐나다 출신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65)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교수(커뮤니케이션)는 2015년 저작 <존재권력>에서 “9·11의 여파로 현재 우리 삶의 많은 점들이 선제성이라는 새로운 지배소를 중심으로 재편성되었다”고 말한다. 질 들뢰즈 등 프랑스 철학과 이론을 영어권에 소개해왔으며 ‘정동’(affect)에 대한 대표적 이론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이 책에서 ‘9·11 이후’가 본격적으로 드러낸 현재 세계 속 권력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탐구한다. 선제성 개념이 잘 보여주듯, 오늘날 권력은 과거처럼 금지나 억압 같은 부정적인 힘으로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존재하도록 방향 짓는 권력, 곧 ‘존재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조지 부시는 2002년 ‘선제’가 그의 국가 안보 전략에서 지도 원리가 될 것이라고 공표하며, 이는 냉전 시대의 ‘억제’ 패러다임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지은이는 “선제가 억제와 다른 점은 객관적으로 미결정적이거나 잠재적인 위협을 완전히 형성되고 명시화된 위협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구성적 원인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말한다. 현재를 미래의 원인으로 만들어 스스로 지속하는 운동을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선제와 억제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객관적인 원인과 결과에 의존하는 억제와 달리, 선제는 미래의 잠재적인 원인을 곧바로 현재의 실제 효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위협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선 되레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시킬 필요가 요청된다. “있었을, 했었을” 같은 조건문이 곧바로 행동의 이유가 된다. 이 때문에 선제성은 아예 적극적으로 존재를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권력, 곧 존재권력으로 드러난다.
미셸 푸코는 신자유주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현시대의 지배적 권력 체제의 특징을 “환경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환경에 작용을 가하여 그 변수들을 체계적으로 조정하려는 통치성”이라는 뜻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존재권력은 삶의 조건들에 개입해 이를 바꾼다는 측면에서 푸코가 말한 “환경적” 권력과도 상통한다. 행동이 실제로 형성되기 전에 행동의 조건에 조처를 취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을 영토화하는 힘이 아니라 ‘시간을 장악하는 힘’이 존재권력의 핵심이다. 또 행동과 반응을 위해 몸을 ‘점화’하는 인간의 지각 체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동에 뿌리를 둔다. 미래에 잠재되어 있을 뿐이었던 위협은 경험을 넘어서 아예 추상화되어버린 ‘공포’라는 정동적인 배경을 타고 현실에 실재할 수 있게 된다. “갓 부상하고 있는 위협을 선취하여 분명한 현재적 위험으로 바꾸는 조치는 실제 사실과는 상관 없이 공포라는 정동 사실로 인해 합법화된다.” 단순히 말하자면, 조작된 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억압하거나 금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동적으로 ‘느껴진’ 것을 통해 무언가를 자율적으로 생성되도록 만드는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 존재권력이다. 이렇게 ‘느껴진’ 위협은 한번 발동되면 선제행동에 영원히 정당성을 부여하며 자기-영속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2001년 9월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가해진 테러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정부는 ‘선제적’ 대응을 앞세워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고, 이는 20년 동안의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정동’ 이론가로 잘 알려진 캐나다 출신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 위키미디어코먼스
지은이는 존재권력이 이전의 권력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존재권력은 ‘경성’(군사 개입)에서 ‘연성’(감시) 권력까지 모든 스펙트럼에 걸친 권력들을 가로지르고 아우르는 하나의 권력 양식이다. 그것은 “선제성이라는 새로운 발판 주변에 이전 권력들을 재조직·재통합하며, 그런 과정에서 그것의 대상과 작동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이는 존재권력이 다른 어떤 양식보다도 더 ‘프로세스’적으로 강력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지은이는 ‘작동논리’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작동논리는 “스스로에게 자기-원인됨의 권력을 부여하는 식으로 존재론을 인식론에 결합시키는”, 다시 말해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기계적 과정’처럼 자신의 유지를 위해 비슷한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생성해내는 프로세스다. 그렇다면 선제성을 기반으로 한 존재권력이 어째서 오늘날 가장 강력한 작동논리가 될 수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래조차 현실로 옮겨놓을 수 있는, ‘관역사적’(transhistorical)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역사를 관통하며 쌓인 어떤 경향들이 현실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권력으로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권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존재권력은 하나의 양식일 뿐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반전과 반자본주의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짧은 몇십 년간 활동적인 역사를 이룩한 행동-지각의 양식들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스스로 더욱 강력한 존재권력이 되어 ‘대항-권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흐름의 방향을 그때그때 다른 종점으로 향하도록 굴절하면서 흐름과 함께 앞으로 전진하는 선택만 남아 있다.” 선제성에 대한 분석에 따르자면, 지배적인 경향이 되었던 것은 모든 모퉁이에서 대항적인 경향으로 방향을 바꿀 뻔했던 것들이다. 다른 조건문을 제시한다면 그에 걸맞은 다른 잠재성 역시 현실화할 수 있단 얘기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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