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강명관 지음 l 푸른역사 l 1만5900원
1558년 대구 사족 유유는 집을 나가 종적을 감추고 4년 뒤 가짜 유유가 자신이 유유라고 자칭하며 나타난다. 1564년 가짜 유유를 만난 동생 유연은 그가 가짜임을 눈치채고 고소하는데, 진위를 가리는 중에 가짜 유유가 도주한다. 이때 유유의 아내 백씨가 가짜 유유가 자신의 남편이 맞다고 주장하며 유연이 적장자의 지위와 토지를 빼앗기 위해 형을 살해했다고 고소해 형제 살인 사건으로 바뀐다. 이 사건이 왕에게까지 보고되며 서울에서 추국이 이뤄지는데 결국 유연은 사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1579년 진짜 유유가 나타나고, 재조사가 시작돼 이 일을 주도한 범인으로 유유와 유연의 자부 이제가 지목돼 고문을 받다 사망한다. 16세기 후반 조선 사회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두고, 한문학자인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에서 유연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의도로 쓰인 글인 이항복의 <유연전>과 재조사를 거치며 사건의 최종 악인으로 지목된 이제의 억울함을 소명한 권득기의 <이생송원록>에 담긴 사실 정보를 건져 올려 합리적 추론을 해나간다.
가짜 유유가 나타나 벌인 사기에서 유유의 아내 백씨의 행동에 의문점이 있는데도 제대로 된 조사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은이는 주목한다. 유유와 백씨 사이에선 아이가 없었고 그 원인이 분명 유유에게 있었을 가능성을 짚는데,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남겨진 백씨는 재가를 할 수 없고 자식이 없었으므로 집안 내 권한을 지닐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 시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백씨가 세운 생존전략은 비정하지만, 한편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그녀의 처지와 사족 남성인 유유의 비밀이 백씨의 입을 통해 드러나길 바라지 않았던 강고한 사회적 질서가 숨막히게 다가온다.
유유의 진위 여부는 팽개쳐진 채 벌어진 두 차례의 조사에서 비합리적으로 작동된 사법제도의 문제점도 부각된다. 근거 없는 소문들로 형성된 여론 역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재조사에서도 범인으로 지목된 대상만 바뀌었을 뿐 과정은 똑같이 비합리적이고 잔혹하기에 유유 사건은 비극적이다. 책은 약 500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며 은폐된 진실을 추론하고 가려진 욕망들을 짐작해보며 현재는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사회상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비합리적인 면면을 목도하게 되는 사법제도와 여론 형성의 과정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은 무엇일지 책은 생각해보게 한다. 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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