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서양철학의 흐름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조현진·유서연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 2만5000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조현진·유서연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 2만5000원.
잠깐독서
‘철학은 죽었다.’ 철학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인상적인 명제다. 도대체 왜 어디서 어떻게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그 맥락이 종종 궁금하기도 했다. 달을 넘어 우주정복으로, 장기 이식을 넘어 인간 복제로 치닫고 있는 21세기 최첨단 문명의 시대 속에서, 핵 파멸의 위협과 인종주의의 극한적인 충돌 조짐 등 인류의 불안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지구촌 곳곳의 뉴스를 일상처럼 흘려 보내다가도 문득 이런 ‘철학적인’ 의문들이 떠오른다.
<20세기 서양철학의 흐름>(이제이북스 펴냄)은 우선 이런 궁금증에 대한 즉답은 아닐지라도,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갖고 해답을 찾으려 애써온 철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줘 반갑다. ‘…철학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과거의 철학적 논쟁을 재독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철학이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했는지 밝히는 작업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있는 저자가 1995년에 쓴 480쪽의 제법 방대한 이 책을 10년이나 지난 지금 번역 소개하는 의미도 아마도 여기에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처럼 단순히 지난 세기 철학의 역사를 정리한 ‘교과서’는 아니다. 저자는 현대성의 시작 시점으로 스스로 규정한 1880년부터 20세기 말까지 서양철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짚는다.
계몽정신과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진보의 희망으로 출발했던 20세기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고 더불어 철학도 혼란에 빠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아우슈비츠에 대한 철학의 침묵과 하이데거를 비롯 호전적 애국주의 동참한 철학자들을 냉정하게 비판한다. 또 냉전시대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대결로 치달은 철학의 흐름은 분명 잘못됐다고 선언하고, 지금 우리는 지난 세기의 잘못에 대한 기억상실·종교적 근본주의와 인종주의의 재등장·미디어의 폭력적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원한 미완의 성채이자 오늘날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유일한 공간’인 철학은 논증과 토론으로 강화된 계몽주의의 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결코 죽지 않았고 죽어서도 안된다.’그의 해답은 아직 희망적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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