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원로정치학자 신복룡 전 석좌교수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신복룡 교수가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신 교수가 최근 완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지난 2월 나관중 ‘삼국지’ 전집 이어
동·서양 대표 인물전 번역 ‘기록’
“가난탓 고달팠던 젊은 날의 꿈 이뤄” 누락됐던 ‘비교 평전’ 부분 첫 소개
“청년기 우정·야망·정의감 감명” 그는 영웅전 인물들에 대해 “우리와 꼭 같은 역경을 체험한 필부들”이라며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더 많이 읽었고, 처절한 인내와 지혜로 고난을 이긴 점”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애지중지한 제자 알렉산드로스는 엄청난 독서가였어요. 그가 바빌로니아 원정 때 스승이 <정치학> 책을 내자 ‘그 책은 나만 읽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라며 스승을 원망했을 정도였죠.” 신 교수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영웅전에서 ‘애국심과 청년기의 우정과 야망, 죽음을 초월하는 정의감’을 읽어내길 바란다며 로마 명장 코리올라누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로마 대장군으로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정적의 모함에 빠져 추방된 코리올라누스는 적군 대장군이 되어 조국을 향해 복수전을 합니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손주들을 이끌고 아들 앞길을 막고 ‘네가 조국을 유린하려거든 이 어미 시체를 밟고 지나가라’고 해요. 아들은 이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적국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죠. 영웅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하사받은 영웅전에서 코리올라누스 편을 읽은 뒤 그의 생애를 희곡으로 씁니다. 로마를 일으킨 것은 위대한 어머니들이었죠.” 동학사상의 민족주의 연구로 모교인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신 교수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나서 죽을 때까지 다닌 곳을 샅샅이 누비며 <전봉준 평전>(1982)을 썼고, <한국분단사연구>(한울, 2001)와 <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같은 굵직한 학술서도 출간했다. 그가 우리말로 옮긴 한말 외국인 기록 23권은 한국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나는 정치학자라기보다는 역사가”라는 신 교수는 번역에 힘쓴 이유를 두고 “외국인이 쓴 한국 관계 여행기나 포교·의료·탐험을 주제로 한 책을 자료 삼아 한국사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역사는 <고려사>나 <삼국사기> 또는 <조선왕조실록>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편의 가치가 있어요. 이런 부분은 한국사 연구의 맹점인 대롱시각(좁은 시야로 역사를 보는 것)으로는 풀 수 없어요.” 한말 외국인 기록 23권 중에서 의미가 큰 책을 묻자 그는 <금단의 나라>(E. J. 오페르트)와 <한국의 야생동물지>(베리만)를 꼽았다. “<금단의 나라>는 대원군 생부의 묘를 도굴한 독일 유대인 상인 오페르트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문화인류학적 분석을 한 책입니다. 스웨덴 출신 베리만이 쓴 동물지에는 조선 동물 화보가 120장이나 나옵니다. 베리만은 나중에 자국 박물관에 한국관도 만들었죠.” 신 교수에서 한국 현대사 인물 중 한 명을 영웅전으로 다룬다면 누구냐고 묻자 혁신계 정치인이었던 고정훈(1920~88) 선생을 꼽았다. “한국 현대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죠. 일본 유학을 가 영어를 배웠고 만주 하얼빈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해방정국에 소련군 통역관으로 일하다 남하해 미군 첩보부대(KLO)에 몸을 담았고 뒤에 진보 정치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죠.”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국 광둥어로 얼룩진 성경을 고쳐 쓰고 있어요. 연말쯤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신학 문제는 개입하지 않고 표기나 표현, 문법이나 서술이 틀린 부분을 고쳤어요.” 인터뷰 끝에 학자로서 살아온 지난 삶의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중학교를 나와 진학하지 못하고 산에 올라 땔감을 해 지게에 지고 내려오는 데 멀리 신작로를 보니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길을 가더군요. 그때 느낀 심정이죠.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고드름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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