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그리는 서사시
조대호 지음 l 그린비 l 1만7800원 플라톤은 <국가>에서 새롭게 만들어갈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정치적 기획을 펼치며, “전체 그리스를 가르쳤던” 서사시의 아버지 호메로스의 가르침을 싹 씻어내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니체 같은 학자들은 플라톤과 호메로스의 적대 관계에 주목하곤 했다. 서양 고전철학 전문가인 조대호 연세대 교수(철학)도 새 저작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상상 세계>와 다음에 낼 <‘국가’, 플라톤의 이상 세계> 두 권의 책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호메로스와 플라톤, 곧 시문학과 철학 사이의 적대 관계를 부각시킨다. 지은이는 기존의 접근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과거와 기억에 대한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상반된 태도”를 내세웠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숨겨져 있던 과거를 드러내는 ‘서사적 상상 속에서 소환된 과거의 기억’이라면, 플라톤의 철학은 구체적 장소와 시간을 벗어난 법칙 세계에 대한 보편적 앎, 곧 ‘철학적 상상 속에서 소환된 선험적 세계의 기억’으로서 이에 대립한다는 틀거리다. 이번 책에서는 호메로스 서사시가 어떤 배경에서 출현해 고대 그리스 세계에 어떤 구실을 했는지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기원전 7세기 이후 그리스인들에게 입으로 전승되던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와 이를 장편 서사시로 종합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서사적 상상 속에서 ‘사라진 과거’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그리스 세계를 하나로 묶어준 문화적 연대 의식에 통일성과 정당성을 부여했고, (…) 그리스인들에게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판단과 행동의 규범을 담은 교과서였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석고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석고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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