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젊은 시절 강연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접했습니다. 이 회장 생전에 삼성그룹 담당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달변인지는 몰랐습니다. 그의 능수능란한 모습이 참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제 결론은 ‘성찰’이었습니다. 재벌회장이 회사 임직원들 앉혀놓고 지적하는 일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누군가들은 ‘위기 의식을 불어넣어 조직을 탈바꿈시켰다’고 그럴듯한 해몽을 덧붙이지만, ‘위기 조장의 리더십’에서 지배하려는 욕구만 지독하게 느껴졌습니다.
인문학이든 Humanities(휴머니티스)든, 사람이 빠지지 않습니다. 사람과 삶에 대한 사유의 확장입니다. 자유와 평화도, 공동체와 생태계도 여기서 끝없이 펼쳐져 나옵니다. 문사철의 전통이든 자유인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지식이든, 사람이 빠지지 않습니다. 타자화와 대상화는 성찰의 반대편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이 빠진 맹목의 기술은 살인기술로 타락하곤 합니다. 법과 의료, 컴퓨터와 금융 모든 곳에서 우리는 그런 성찰 없는 기술들을 보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를 강타한 시리즈 <오징어 게임> 마지막회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재미 없지.” 놀이가 그러하겠으나 삶 역시 그러하다, 새삼 되새겼습니다. 보기를 넘어 해보기가 진짜 성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군폭력을 다룬 드라마 〈D.P.〉에서 가해자는 막바지에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타인의 자리에 나를 놓아보는 태도로서의 성찰 없이는 괴물이 되어버릴지 모릅니다. 인문학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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