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마지막 날, 시월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똑똑, 들립니다. 공활한 하늘, 선선하게 긋는 빗발에 더해, 가을냄새가 공기 속을 떠돌기 시작하고, 마음은 가라앉습니다. 몹쓸 바이러스만 아니면, 이 마음을 간직한 채, 들과 산으로, 강과 바다로 떠나고 싶습니다.
현실은 책상 앞, 책을 읽습니다. 일과 휴식의 경계는 흐릿합니다. 기사 쓰기를 위한 책은 일이요, 읽고 싶었던 책을 들추면 휴식입니다. 일은 어찌된 일인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써야 한다는 생각이, 훼방 놓습니다. 다른 책에 자꾸 곁눈질이 갑니다.
책장을 확 덮어버립니다. 마음의 평화도 집중력도 깨져버렸습니다. 50억이라니, 몇백억 몇천억이라니. 억억거리는 소리에 현실감은 사라지고,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에스에프(SF)보다 더한 비현실 환상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저뿐이겠습니까. 분노와 절망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메아리치는 듯합니다.
생존투쟁입니다. 녹슬고 부서진 사다리에 매달려 아등바등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생존투쟁의 오징어 게임이 곳곳에서 펼쳐집니다. 종국에는 올라설 수 없는 운명과 구조 앞에서, 반칙은 없는가 눈에 불을 켜고 둘러봅니다. 게임은, 그러나, 이렇게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게임장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사다리 너머에서 시시덕거리는 이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짐승의 가면을 벗겨내야 합니다. 억억거리는 소리에 현혹되어 인간을 내던질 것이 아니라, 숨겨진 진짜 반칙에 목소리 높여 반대해야 합니다. 오징어 게이머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연대해야 할 ‘우리’입니다. 다시 책갈피를 들춰, 가을 물씬한 사유의 숲에서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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