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심장
김숨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1만4000원
철상자에 갇힌 답답함. 닫힌 공간에서 강렬히 느껴지는 모종의 예감들. 그 안은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이고 소멸의 냄새가 짙게 풍기며 종말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이 철상자는 철배의 심장이다. 대형선박의 엔진을 비롯한 주요 설비가 들어가게 될 거대한 상자다. 이런 상자 수백개가 모여 철배가 된다. 살아 숨쉬어야 할 생명들은, 숨쉬지 않는 철상자에 갇혔다. 철상자 바닥에서 포설공들은 거대한 전선을 깔고, 용접공은 철판을 녹여 늘이고, 파워공은 그라인더로 철판 표면을 깎고, 망치공은 철판을 두드려 펴고, 사상공은 철파이프를 자르고, 터치업 도장공은 철판에 페인트를 칠하고, 스프레이 도장공은 철판에 분사기로 페인트를 뿌린다. 취부공은 철판 조각들을 맞추고 발판공은 작업자들이 움직이며 일할 발판을 만든다.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제비심장>은 조선소에서도, 건조 중인 대형선박 안에서도, 배의 심장에 해당하는 철상자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하루의 반을 철상자에 갇혀, 입구와 출구가 같은 철상자에 갇혀,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시공간을 감각할 수 없으며 꿈인지 현실인지 인지할 수 없고, 자신이 유기체인지 무기물인지 사람인지 쇠인지도 잊게 된다. 그저 한나절을 이리저리, 가라면 가라는 대로 오라면 오라는 대로 떠돌 뿐이다. 욕망과 의지를 빼앗긴 채 그들은 길을 잃고 부유한다. 발판은 멀고 구조는 복잡하며 철가루 쏟아지고 매캐한 연기와 화학약품 냄새 가득한 그곳에서 그들은 탈출할 수 없다. 탈출할 생각조차 못한다.
김숨은 2005년 소설집 <투견>으로 시작해 16년간 스무권이 넘는 소설을 냈는데, 입양아, 철거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강제 이주 고려인 등이 주인공이었다. 위안부 피해자 증언 소설은 다섯 권짜리 연작으로 내놓았으니, 버림받고 쫓겨나고 뿌리 뽑힌 이들에 대한 집요한 시선은 김숨 문학의 존재 이유라 해야 마땅하다. 김숨은 이미 <철>(문학과지성사·2008)을 통해 1960~80년대 조선소 노동자들을 조명했다. 조선소 마을은 ‘자본’(주의)에 열광하고 ‘개발’(독재)을 기대했으나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마을주민들에게, 국민들에겐 신기루일 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10여년이 흘러 다시 조선소로 눈을 돌린 것은,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목격한 탓이 아닐까. 노동운동에서조차 소외된 비정규직과 여성과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김숨을 다시 조선소로 돌아가게 했으리라.
개발독재 시대를 반세기 남짓 지나온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는 더욱 교묘하고 잔인하고 악독해졌다. <제비심장>이 이야기하는 조선소에는 ‘조선소 노동자’가 없다. “반장도 조선소 노동자가 아니”며 “우리 중에는 없”다. “조선소에서 일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조선소 노동자를 만난 적이 없”다. “철배를 만드는 우리는 세 부류로 나뉜다. 정규직 노동자, 하청 업체에서 파견한 노동자, 하청 업체에서 재하청을 받는 물량팀에서 파견한 노동자.” ‘나’(혜숙)는 물량팀 노동자다. “우리는 조선소에서 일하지만 조선소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다. 박 반장 같은 물량팀 반장들이 우리에게 임금을 준다.” 노동계급은 이제 하향 분할되었다.
‘나’를 비롯해 주요 인물은 대개 오십대가 넘는 여성들이다. 새벽 6시에 눈을 떠 오줌 누고 양치 하고 세탁기 돌리고 고혈압 약 먹고 티브이 틀고 쌀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콩나물국이나 미역국 끓이고 남편이 신음하며 깨어날 때쯤 세수하고 머리 빗고 화장하고 아들들 깨우고 식탁 차리고 남편과 아들들이 모두 조선소로 출근하고 나면 “하루가 다 간 것처럼 기운이 빠져서 그냥 무덤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지만 (…) 뺑끼칠을 하면 벌 수 있는 일당을 생각”하며 나서는, 집과 일터에서 모두 소외된 나이든 여성들이다. 여성의 시선은, 그러나 희망의 실마리다. 혜숙은 “뼈와 내장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물고기만 먹”던 베트남 출신 발판공 ‘녹’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도장공 중 가장 어린 마흔아홉 살 미애는 첫번째 도장공 남편이 폐암으로 죽고 두번째 용접공 남편이 빚만 남기고 도망간 뒤 우크라이나에 처자식 두고 온, 말도 안 통하는 남자와 산다. 우크라이나 본처를 위해 밤마다 기도한다.
<제비심장>은 초현실주의 시 같기도, 부조리극 대본 같기도 하다. 꽤 자주 허공을 떠도는 음성들이 불쑥 뛰어들고 맥락을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끼어든다. “우리 며칠째 걷고 있는 거야?” “물이 얼마 안 남았어.” “신발 속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어.” “정말, 둥지 속 아기 새처럼 온기 한 움큼이 웅크리고 있네.” “끈이 풀려 있어.” “단단히 묶어. 떨어질 때 풀리지 않게.” 끝나지 않는 노동의 고단함과 절망,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담겨 있지만 자연스레 서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떠도는 말들, 비명 같은 외침, 자포자기의 뇌까림, 희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나지막한 읊조림들은 소설 속 철상자를 채운 존재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흩트린다. 생사의 경계에서 하루살이 하는 노동자들은 어쩌면 유령일지 모른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하루살이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나’는 “철상자에 손을 대”보고 “온몸을 밀착시킨” 채 그 “쇳덩이”에서 “비릿한 피냄새”를 맡는다. “한때 조선소 용접공이었던 정 씨가 4호 크레인 위에 있다는 걸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잊곤 한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 역시 정 씨와 다르지 않음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처절한 냄새인 것이다. 철배의 심장에 견줄 수도 없을, 작은 심장이 팔딱이려면 ‘잊지 않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여린 심장에 물찬 제비의 날개가 달려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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