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독일의 대중적 철학자가 풀어쓴 ‘공동선을 위한 의무’ 논쟁
독일의 대중적 철학자가 풀어쓴 ‘공동선을 위한 의무’ 논쟁
마스크 시대의 정치학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l 열린책들 l 1만3800원 코로나19 팬데믹 이래로 서구자유주의 사회에서 ‘노 마스크’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듯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비롯한 방역 정책에 반감을 지닌 이들이 없지 않다. 생존권 위협에 시달리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제외해도, 기본권 제한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감염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일시적, 잠정적으로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임을 누구나 알고 있을 터. 생명권 내지 건강권과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가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쪽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지는 명약관화하다. 독일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이 당연해 보이는 문제를 정치철학으로 풀어 설명하려고 <의무란 무엇인가>를 썼다. 물론 책의 전반적 맥락은 독일 상황에 기반하고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도 유용한 내용이 많다. 프레히트는 우선 국가의 역할을 해명한다. 19세기부터 시민계급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시민의 행복이 국가의 통치 목표가 되고 ‘돌봄 및 대비 국가’가 등장한다. 또한 산업혁명을 거쳐 노동력이자 소비자인 시민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생체 정치’가 출현한다. 시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는 경향이 생겨나면서 시민들은 “내가 기대한 대로 국가가 해주지 않으면 (…) 공동선의 의무를 내팽개”쳐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딜레마도 시민들이 의무를 소홀히 여기게 만든 주요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공동선에 기반한 시민의 적극적 참여가 주춧돌이지만, 자본주의 영향으로 시민은 이기적인 소비자가 되어간다. 예컨대 탄력적 가격정책은 소비자의 사회적 신뢰를 감소시킨다. 이윤 극대화만을 위해 시장경제의 무한한 자유를 터보 엔진처럼 밀어붙이는 ‘터보 자본주의’는 한국사회에서도 절감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이기심이 무한정 장려되고 시민적 연대 의식이 소홀히 취급받”는 악순환이 바로 마스크를 거부하는 시민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적 연대, 공공선의 중요성, 효능감 등을 시민들에게 일깨워야 한다며 지은이는 ‘사회적 의무 복무’ 제도를 제안한다. 다분히 독일적 대안인데, 징병제가 유지되고 대체복무제가 시행 중이며 남녀평등복무제까지 논의되는 한국에서 꽤 의미있는 논의의 실마리가 될 법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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