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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재개그에 대한 최고반응은 ‘그만하라’ 아니겠어요”

등록 2021-11-04 17:50수정 2021-11-05 02:31

[짬] 저술가 겸 여행 가이드 김철호씨
말놀이 탐구 ‘아재개그를 권함’ 펴내

김철호 작가는 “아재개그란 말도 이젠 낡았다”며 그 대체어로 말주무르기라는 뜻 의 ‘말주물럭’을 제시했다. “아재개그란 말에 일부 부정적인 의미도 있잖아요. 말주무르기가 의미상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말놀이나 말장난은 말주무르기의 일부이죠.”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철호 작가는 “아재개그란 말도 이젠 낡았다”며 그 대체어로 말주무르기라는 뜻 의 ‘말주물럭’을 제시했다. “아재개그란 말에 일부 부정적인 의미도 있잖아요. 말주무르기가 의미상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말놀이나 말장난은 말주무르기의 일부이죠.”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철호씨는 터키 여행 전문 가이드이자 한국말과 글을 주제로 책을 쓰는 저술가이다. 2009년부터 패키지 관광 가이드로 나서 지금껏 터키 여행만 200차례 이상 이끌었다. 동유럽과 스페인 투어 가이드도 각각 50회와 20회씩 했다. 그가 가이드로 변신하기 3년 전인 2006년 서울대 국문학과 동기 김경원씨와 함께 쓴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 시리즈는 모두 13만권이나 나갔다. 코로나19로 가이드 일을 쉬면서 지난해 7월 펴낸 <슬기로운 낱말 공부-언 다르고 어 다르다>도 벌써 4쇄를 찍었다.

“아재개그가 삶의 일부이며 마이크 잡고 잘난 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가 이번에는 아재개그를 탐구한 책 <아재개그를 권함>(뿌리와 이파리)을 냈다. 부제 ‘말놀이가 인간 행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 말하듯, ‘아재개그’라고도 하는 말놀이가 도대체 뭔지부터 시작해 그 효능과 숙달법 등을 살폈다. 지난달 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심도나 빈도 차가 있을 뿐 아재개그는 누구나 해요. 다 있는 본능이죠. 20~30명이 탄 관광버스에서 제가 ‘(유료화장실 아니라) 무료화장실만 쓰면 인생이 무료해질 수 있습니다’, ‘터키 장미오일 오일만 써보세요’라고 아재개그를 하면 처음에는 ‘어유, 썰렁해요’라는 반응이 나와요. 하지만 얼마 뒤 손님들이 다 따라 합니다. 버스 안이 순식간에 ‘아재개그 생산공장’이 됩니다.”

‘너 진라면 먹는구나? 나 이긴라면 좋아하는데’ 같은 그의 싱거운 말장난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호기심 왕성한 어린이란다. “스페인 투어에서 만난 초등생은 ‘사부님, 하나만 더 해주세요’라며 졸라대기도 했죠.”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언어에 대한 관심이 그 부산물인 말놀이로 이어졌다는 작가는 “아재개그는 삶의 태도”라고 했다. “매사 진지하거나 또는 아침형 인간이나 돈만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아재개그가 나올 여유가 없어요. 경쾌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생길을 가려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는 “아재개그를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근없낙(근거없는 낙천주의)에 근거한 꿋꿋함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와 아재개그가 하나가 된 데는 어머니 영향이 크단다. “어머니는 제가 ‘왜요’하면 ‘왜요는 왜놈들 담요지’라며 갑자기 말의 맥락을 비트는 말놀이에 능숙하셨어요. 제가 어릴 때 ‘심심하다’고 하면 ‘심심하면 간장 찍어 먹든지’라고 하셨죠. 올해 여든 다섯 고령인데도 경쾌하고 씩씩하게 사세요.”

그는 책에 “어색하고 불편한 아재개그가 아니라 건강하고 유쾌하고 인간미 넘치는 아재개그가 나의 이상”이라고 썼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시인이 저한테 ‘먼저 드시고 계세요.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으시고요’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어요. 뭘 먹다의 ‘드시다’를 들다로 비틀어 말놀이를 한 거죠. 그걸 본 순간 마음이 따듯해졌죠.”

‘말놀이, 인간 행복에 끼치는 영향 고찰’
개념부터 효능·숙달법까지 두루 살펴
“짱돌처럼 단단한 아재개그 명작 목표”

서울대 국문학과 출신 20여년 ‘글밥’
‘터키의 유혹’ 저자 따라 가이드 변신

그는 “아재개그가 가장 잘 먹힐 때는 던지는 이와 받는 이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때”라며 이를 근거로 “아재개그에는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가깝게 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고 추론했다. “너무 가까우면 아재개그 효능을 기대하기 힘들어요. ‘그만 좀 하라’는 핀잔만 듣죠.” 하지만, 핍박 속에도 그의 아재개그는 끊이지 않는단다. “친구들이 제 아재개그에 ‘죽인다’고 반응할 때도 많아요. 아이들도 ‘아빠, 창피하니 밖에선 절대 하지 마라’고도 해요. 저는 그게 제 아재개그에 대한 최고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니까요.”

아재개그는 사람이 처한 실존적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 삶의 여유를 갖게 하고, 세상살이에 대한 지혜도 키워준다고도 했다. “대학 다닐 때 과 1년 선배인 강헌 대중음악평론가와 바둑을 뒀어요. 제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장고하자 선배가 ‘야, 돌이 죽지 사람이 죽냐’고 하더군요. 바둑에 죽자사자 몰입했던 저를 일순간에 현실 모드로 돌려놓은 촌철살인이었죠. 말놀이는 사람이 처한 맥락에서 벗어나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기능이 있죠.”

세상의 모든 언어에 흥미를 느낀다는 저자는 인터뷰 도중 기자의 이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석 자 다 유성음(모음과 ‘ㄴ’, ‘ㄹ’, ‘ㅁ’, ‘ㅇ’)이 있어요. 유성음은 목젖이 울려 청각적 공명이 이뤄집니다. 나에게서 나간 파동이 상대에 가닿는 거죠. 언어적으로 유성음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알타이어가 모음이 굉장히 발달했어요. 알타이어 계통인 터키어는 단모음이 8개나 됩니다. 인도유럽어인 슬라브어는 자음 다섯개가 연결된 단어도 있어요.”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의 모든 언어에 흥미를 느낀다는 저자는 인터뷰 도중 기자의 이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석 자 다 유성음(모음과 ‘ㄴ’, ‘ㄹ’, ‘ㅁ’, ‘ㅇ’)이 있어요. 유성음은 목젖이 울려 청각적 공명이 이뤄집니다. 나에게서 나간 파동이 상대에 가닿는 거죠. 언어적으로 유성음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알타이어가 모음이 굉장히 발달했어요. 알타이어 계통인 터키어는 단모음이 8개나 됩니다. 인도유럽어인 슬라브어는 자음 다섯개가 연결된 단어도 있어요.”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는 가이드 생활 이전 20년 가까이 출판사 기획자로 일하며 약 200권의 책을 편집했고 직접 번역한 책도 20권이 넘는다. 출판사도 창업해 4년 동안 운영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88년부터 1년6개월 동안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백 코러스와 스태프로도 활약했다.

그가 출판사 대표 자리와 터키 가이드를 맞바꾼 데는 2년 가까이 공들여 직접 편집한 책 <터키의 유혹>(강용수 지음, 2007) 영향이 컸단다. “책 제목이 힘을 썼죠. 편집하며 친해진 저자가 터키에서 여행사를 차렸다고 해서 무작정 터키로 갔어요. 그때 출판사 경영도 하향곡선이었고요.”

그는 내년 초에는 다시 가이드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이다. 이전과는 달리 ‘가이드가 주도하는 패키지 여행’을 이끌려고 한다. “지금은 손님이 가이드를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내년부터 하려고 여행사와 계약한 투어는 미리 가이드 정보를 제공하고 손님이 선택한 가이드가 여행을 설계합니다. 가이드가 을이 아니라 갑인 여행이죠. 쇼핑이나 옵션 관광도 없고요.”

그의 인생 목표 중 하나는 ‘아재개그 명작 만들기’다. “시인이 좋은 시를 쓰고 싶어 하듯 저도 아이디어를 다듬어 단단한 짱돌 같은 아재개그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지금껏 만난 최고의 아재개그 고수는 강헌 평론가라면서, 대학 때 자신이 던진 아재개그에 강 평론가가 ‘심금을 웃긴다’로 맞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아재개그 놀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 뭔지 물었다. “아재개그를 던지는 순간 제 안에서 엔도르핀이 나옵니다. 약간의 흥분과 쾌감이죠. 내가 먼저 즐거워야 그게 마주한 사람에게까지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재개그 고수를 만나면 긴장도 됩니다. 그들보다 더 단계가 높은 아재개그를 해야 하니까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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