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로잘린드 오르미스턴 지음, 김경애 옮김 l 씨네21북스 l 4만원 반 고흐를 보라. 사후 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생전에 가난과 고립으로 고통받았던 예술가들은 짠하다. 이와 반대로, 살아서 부와 명성을 얻은 알폰스 무하(1860~1939)는 재능에 합당한 대접을 받은 복 받은 작가다. 그는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온 화려한 배경 속에 아름다운 여인들을 신비롭게 묘사한 아르누보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힌다. 체코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궁핍한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곧 프랑스와 미국에서 포스터 제작·보석 디자인·실내 장식가로 활동하면서 ‘무하 스타일’로 이름을 떨쳤다. 국내에서도 수차례 전시회가 열려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고, 그의 작품은 갖가지 아트상품 디자인으로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초상화 작가로 인정 받기를 원했고, 궁극적으론 슬라브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체코인으로서의 정서적 유대감을 고양시키고자 했다. 고국에서 “프랑스에 팔린 작가”라고 비난 받으면서도 가로 6m, 세로 8m의 대작 20점으로 구성된 <슬라브 서사시>에 14년간 매진한 이유다. 히틀러를 비판했던 무하는 1939년 나치의 침공 이후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곤욕을 치렀고 그 여파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그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무하는 이목을 끌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충실히 작품 활동에 임했고, 그 모든 결과물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무하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성실한 작가라고 모두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무하를 통해 예술가가 갖춰야 할 미덕인 성실성과, 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허세를 구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