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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술진화가 바꿀 수 없는 풍경과 마음

등록 2021-11-05 05:00수정 2021-11-05 10:32

[한겨레Book]

행성어 서점
김초엽 지음 l 마음산책 l 1만4500원

인공지능, 사이보그, 우주여행 같은 스펙터클한 소재를 섬세한 감성과 접목시켜 에스에프(SF) 문학의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낸 김초엽 작가의 짧은 소설집이 나왔다. 기술진보로 인한 신체의 기계화에 대한 탐구와 기술문명에서의 부적응과 소수자 문제 등 작가가 집중해온 주제들이 14편의 작품에 고루 담겨 있다.

표제작은 많은 이들이 상상해보는 미래, 모든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통역모듈이 일상화된 시대, 외국어뿐 아니라 외계어까지 자유자재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시술부적응자로 외계어를 공부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많은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정작 자기 힘으로는 아무런 언어도 구사할 수 없게 된 세상에서 행성어 서점 점원인 ‘나’와 교수 사이에는 유대감이 싹튼다. 첫 수록작 ‘선인장 끌어안기’는 ‘접촉 증후군’에 걸린 건축가의 비통한 사랑을 인공지능 로봇의 시선으로 그린다.

‘포착되지 않는 풍경’에서 과거 기술이 되어버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진가인 주인공은 한 외계 행성의 레몬색 별안개를 화면에 담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안개를 구성하는 금속 미생물 입자들이 데이터 오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파일 복구를 포기한 주인공은 할 수 없이 두 눈에 풍경을 담기 위해 안개 앞에 선다. 누군가 그림을 그리자 옆사람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정적 사이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소리만이 끼어들었다.” 기계문명이 모든 걸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 미래가 와도 우리의 마음과 기억을 담는 아날로그적 행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처럼 읽힌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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