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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온주의 식민기획과 끝나지 않을 팔레스타인 전쟁

등록 2021-11-12 10:19수정 2021-11-12 10:21

식민주의에 분칠한 시오니즘 치밀한 기획
영·미 지정학적 이익 뒷배 삼아 승승장구하는 이스라엘
‘원주민 말살’ 불가능해 분쟁 지속될 터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l 열린책들 l 2만5000원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 예루살렘 시장 등을 지낸 유수프 디야는 1899년 근대 시오니즘 운동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츨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수프 디야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주권 국가를 세운다는 시온주의 구상은 기독교도·무슬림·유대인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고, 오스만 제국 전역에서 유대인의 지위와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그는 팔레스타인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르츨은 곧 답장을 보내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이민을 허용하면 “이 땅 전체의 안녕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라며 “우리의 안녕과 부를 위해 노력하면 그들의 안녕과 개인의 재산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헤르츨은 팔레스타인의 “비유대인”에 대해 “도대체 누가 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자고 생각하겠습니까?”라고 유수프 디야가 묻지도 않은 문제를 거론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 추방은 시온주의가 야기한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문제인데, 시오니즘 창시자는 이를 이미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수프 디야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의 저자 라시드 할리디의 종고조부, 즉 고조부 형제다. 할리디는 이 책에서 가문이 겪은 팔레스타인 분쟁의 경험을 양념 삼아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 분쟁을 파헤쳤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이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주권 국가를 세운 시온주의는 분칠을 한 식민주의라고 지은이는 시종일관 규정한다. 분칠이란 그 땅에 유대인의 역사적 근원이 있다며 식민주의 본국민이 아닌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이 입식의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식민주의를 관철하는 또 다른 가공된 서사는, 유대인이 입식하기 전 팔레스타인은 텅 빈 땅에 불과했고 팔레스타인 원주민 혹은 팔레스타인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반박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 하나는 현재의 유대인들이 2천년 전 조상이 살던 땅에 역사적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할 근거가 있냐는 차원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역사학 교수 슐로모 산드는 저서 <유대인의 발명>에서 현재의 유대인은 고대 이스라엘 주민과는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펼쳐 큰 논쟁을 일으켰다. 그는 현재의 유대인은 로마시대 전후 유대교로 개종한 지중해 지역 주민 후손들이며 혈통적으로 보면 오히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고대 이스라엘 주민과 관계가 깊다고 주장한다. 유대인은 기독교 문명이 만들어낸 타자들이며 유대인성이란 기독교의 박해 속에서 만들어진 민족성이라고 그는 규정한다. 그의 논쟁적인 저서 <유대인의 발명> 등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으나 <유대인, 불쾌한 진실>(2017)이라는 에세이성 논평집이 번역·출판됐다.

또 다른 차원은 유대인 입식과 이스라엘 건국, 몇 차례의 전쟁 등으로 이어진 과정을 국제법적인 기준과 정신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할리디는 이런 관점에서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주권국가를 인정한 ‘밸푸어 선언’ 이후 진행된 팔레스타인에 관한 국제 결의와 합의들을 조망한다. 저자는 이 정착민 식민주의가 여섯 차례 선전포고를 통해 구체화·현실화됐다고 진단한다.

첫 선전포고는 밸푸어 선언이다. 두번째는 1947년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인정한 유엔 결의안 181호, 세번째는 1967년 ‘6일전쟁’ 뒤 승전한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을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다. 네번째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다섯번째는 1987~1995년의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인 인티파다에 이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의 오슬로 평화협정, 여섯번째는 2000년 이후 2차 인티파다 등 팔레스타인 안팎의 저항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는 한편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의 관계 정상화를 밀어붙인 아브라함 협정이다.

할리디는 이런 국제 결의와 협정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인정한다는 명분을 취하나, 본질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식민 영역을 확대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안보리 결의안 242호에는 이스라엘군 철수를 공인된 안전한 국경의 창설과 연계해 국경을 확장할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실렸다. 허점을 이용해 점령지를 계속 보유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오슬로 평화협정 역시 점령지에 건설된 이스라엘 정착촌 인정과 확대의 근거가 됐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할리디는 이스라엘이 계속 승승장구하는 것은 결국 영국에 이은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 관철이 배후이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미국이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중재자로 남아 있는 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공평한 분쟁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의 분쟁 해결 프레임을 벗어던지라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처지는 갈수록 악화됐지만, 국제 여론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좌파민족주의에 입각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하마스 운동은 파산했다고 보고, ‘보이콧·투자철회·제재’ 운동 같은 새로운 운동들이 이스라엘을 더 위협하고 국제 여론을 선도하는 현실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시온주의라는 정착민 식민주의는 팔레스타인 땅에 자리잡기는 했으나,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표현대로 “너무 늦게 도래했다”. 오스트레일리아나 아메리카에서처럼 원주민을 말살하기에는 늦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100년간 전쟁이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희망을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근본주의적이기는 하나 결국은 근원적인 현실주의를 천착한다. 미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할리디는 청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1960년대 한국에서 살았는데, 이런 경험을 비롯한 피식민국가들에 대한 공감이 근원적 현실주의를 천착한 바탕인 셈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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