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l 21세기북스 l 3만8000원 코로나19라는 대재난.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감염병은, 2021년을 마무리해가는 지금 이 시점까지 아무런 예측도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인류의 산업 문명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성찰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57)도 <둠 재앙의 정치학>을 펴내며 이 대열에 동참했다. 퍼거슨의 핵심 질문은 이렇다. 대참사에 맞서 어떤 나라는 무너지고 어떤 나라는 버텨내며 어떤 나라는 더 강해지는가. 저자는 역사를 훑으며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흔히 인재와 천재를 구분한다. 그러나 퍼거슨은 역사상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외계인 침공 등을 제외하면 인공적 참사와 자연에서 비롯한 재난은 구분할 수 없다고 본다. 코로나19뿐 아니라 흑사병, 독감 등 모든 전염병은 인류가 형성한 네트워크를 타고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했다. 네트워크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그 자체로 복잡계이기에 다른 네트워크와 상호작용까지 일으킨다. 신체 감염은 정신 전염과 파괴적 상호작용까지 맺기에 재난은 본질적으로 예측불가능한 영역에 놓이게 된다. 인류는 정치로 재난에 맞설 수 있다고 여겨왔고 실제로 정치가 해결의 주체로 나서왔다. 그러나 퍼거슨은 민주적 제도가 안전장치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19세기 중반 런던 스모그를 해결하려고 연기발생저감법이 만들어졌지만 강력한 독성을 지닌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양차 세계대전만 보더라도 정치는 스스로 재난을 만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1348~1665년 반복적으로 영국을 덮친 흑사병처럼, 코로나19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의 실패는 국가 관료 조직의 실패일 뿐 인류의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류에게 재앙이 상수인 상황에서 퍼거슨은 ‘회복재생력’을 강조한다. “진보는 그것이 진행되는 한 역병으로 멈추는 법이 없다”며 1665년 마지막 대규모 페스트와 이듬해 대화재를 겪은 런던이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것을 예로 든다. 반면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의 관료 조직”을 “진보가 멈추고 침체가 시작된 지역”이라고 꼽으며 역병의 가장 큰 충격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도 충격을 거쳐 다시금 진보가 살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다만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 시스템의 일부만 없앤다면 회복되어 진보할 것이라는 퍼거슨의 견해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전환의 요구’를 도외시한다는 점에서 보수적 현실주의가 지닌 성찰의 한계를 드러낸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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