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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제는 사라진 존재들을 돌아보다

등록 2021-12-10 05:00수정 2021-12-10 19:54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l 엘리 l 1만8500원

앤은 마르쿠제, 파농, 두보이스를 강권했지만 조지는 톨킨을 읽었다. 1968년 미국 뉴욕 명문여대에서 신입생으로 만난 두 백인 여성 앤과 조지. 조지는 가난하고 망가진 가정에서 탈출하듯 대학에 진학했고 앤은 상류층이다. 부유한 백인임이 부끄러운 앤은 조지에게 다가가고 조지는 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앤이 비판적인 사람이 되어갈수록 조지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되어갔다.”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둘의 삶은 운명처럼 얽혀든다.

조지가 대학생이 된 지 얼마 뒤 여동생 솔랜지는 실종된다. 가출한 솔랜지가 어딘가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솔랜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지는 아버지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왔다. 남자 형제들은 총을 들고 베트남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구원도 화해도 불가능한 가족에, 조지는 거리를 두면서도 마음을 거둘 수 없다.

앤은 경찰관을 사살하고 교도소에서 조건부 종신형을 살고 솔랜지는 어느날 조지 앞에 홀연히 나타난다. 흑인 애인과 경찰의 다툼을 목격하고 총을 쏜 앤은 정작 흑인들에게 “혁명 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부잣집 응석받이들”로 비춰진다. 주류 사회는 그를 ‘정신 빠진 테러리스트로’ 손쉽게 규정한다. 솔랜지는 몇년 동안 여기저기를 떠돌며 “모든 남자들과 잤다.” “솔랜지는 그게 정치적 문제라고 했다.” 60년대 말은 그런 시대였다. 반전시위와 민권운동, 마약과 ‘프리섹스’가 뒤섞여 들뜨고 떠돌고 꿈꾸고 절망했던 사람들의 시대.

시그리드 누네즈는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 조지와 앤을 통해 광기에 빠졌던 시대로 돌아간다. 앤은 명확히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다. 판사는 앤에게 종신형을 내리며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비난하지만, 교도소에서조차 “타락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고 냉혹한 전과자가 되지도 않”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인 앤은 “자신을 넘어선 삶에 대한 황홀한 인식을 가진 부류”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되돌아 보면 더더욱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임이 명백하다.

이야기가 중반부를 넘어서면 시점이 때때로 바뀌고, 절정에 이르러 슬며시 돌출하는 반전도 있다. 앤과 앤에 대한 것들에 얽히고설킨 조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놀랍고도 아름답다. “사랑의 매혹, 사랑의 희망과 절망, 그 아름다움과 기이함과 고통에 관한” 서사. 작가의 애틋한 눈길은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깊어진다. 옛날 이야기를 하지만 ‘개츠비’처럼 위대한 후일담에 머물지 않는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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