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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진심 어린 문장에서 생의 감각을 만나다

등록 2022-01-07 04:59수정 2022-01-07 15:30

김병기 화백부터 부안시장 물메기탕 잘 끓이는 여사님까지
시인이 옮긴 사람 얘기 산문집…책 곳곳 담박한 시구들 곱씹혀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
안도현 지음 l 창비 l 1만4000원

연초라 마음이 분주해진다. 결심의 목록을 짜고 자기계발 리스트를 작성하며 여기에 걸맞은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더 부지런히 뛰고 더 벌어야 한다는 압박성 메시지가 넘쳐나는 지금 안도현(사진)의 새 산문집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은 조급한 마음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묻는다. 무엇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가야 하냐고. 왜 이겨야만 하는 삶이냐고.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의 절반은 사람책, 책으로 옮긴 사람 이야기다. 그러니까 독자에게 던지는 앞의 질문들은 책 1부에 작가가 소개하는 스무명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강태형 대표, 백살을 넘겨서도 현역인 김병기 화백 등 알려진 인물도 등장하지만 더 눈을 사로잡는 건 작가 주변의, 그리고 가만히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도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부안시장에서 물메기탕 잘 끓이는 장순철 여사’가 그중 하나다. 아마도 작가가 식당을 들락날락하며 들었을 ‘장 여사’의 개인사와 바쁜 일상과 두 아들의 묵묵한 성실함을 담백하게 적어내려간다. “물메기탕 옆에 숭어회가 빠질 수 없다. 겨울에는 살이 볼그레한 숭어회를 한 접시 같이 주문해야 제격이다. 소주를 물론 빼놓으면 안 되겠지. 햇살이 따듯해지고 냉이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는 주꾸미와 도다리탕이 좋고, 여름철엔 갑오징어회, 가을에는 전어회와 꽃게무침이 제격이다.” 계절과 자연, 입맛을 구수하게 엮은 작가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숨찬 다짐 속에 되레 잊고 있었던 생의 감각이 번쩍 돌아오는 느낌이다.

시인인 작가가 시와 글에 대해 지닌 남다른 애정도 곳곳에 배어 있다. 그가 소개하는 사람 중의 절반 가까이가 시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 어머니 칠순을 맞이해 ‘임홍교 여사 약전’을 쓰면서 그는 “객관성의 힘에 깃든 시적인 아우라에” 매료되었다고 밝힌다. “수십년 시를 쓰면서 시적인 것을 찾아 나섰지만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더 시에 가깝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는 논산 한글대학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이 쓴 시를 보면서도 “비유 이전의 언어”가 담고 있는 “진심”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는 그가 이 산문집에서도 풀어내고 있는 뭉근하고 푸근한 언어의 타래와도 닿아 있다. 이런 푸근함은 역설적이게도 “쓴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두려움, “내가 시를 썼는데 시가 나를 감시하고 지시한다”고 여기는 시인의 예민한 긴장감 때문일 듯. 책 군데군데 작가가 펼쳐 놓은 여러 시인들의 담박한 시구를 곱씹는 것도 즐겁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동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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