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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8세기초 노예제 폐지를 외치고, ‘월든의 숲’을 꿈꾸다

등록 2022-01-07 04:59수정 2022-01-07 15:05

17세기말 영국 태어나 평민·양치기·선원생활
식민지서 고위·지식인층 무관한 ‘노예제 폐지운동’ 시작

벤저민 레이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l 갈무리 l 1만7000원

<대서양의 무법자> <노예선> 등 주로 대서양을 무대로 펼쳐진 민중의 역사를 밝혀온 역사가 마커스 레디커(71)는 <벤저민 레이>(2017)라는 저작에서 우리에게 그리 알려진 바가 없는, 17~18세기 영국과 식민지 미국에 살았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의 이름은 벤저민 레이(1682~1759)로, 지은이는 그가 “1780년 노예제 반대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대를 앞질러 노예제 즉각 폐지를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영국 에식스 지방의 퀘이커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벤저민 레이는 키가 120㎝가량으로 ‘저신장증’과 굽은 등을 지닌, 오늘날 기준으로는 장애인이었다.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젊은 시절 해양 개척 시대의 선원으로 전세계를 여행하며 나름의 배움을 얻었다. 선원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바베이도스의 퀘이커 공동체에 정착했을 때, 그는 아프리카 출신들의 노예를 소유하고 부리는 잔혹한 현실에 분노를 느꼈고 이를 무너뜨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영국으로 되돌아갔다가 1730년 필라델피아에 다시 정착한 뒤, 그는 자유를 말하면서도 노예를 소유하는 위선적인 퀘이커 공동체 안에서 퀘이커의 근본 교리(율법 폐기론)에 입각해 노예제 폐지를 요구하는 열정적인 활동에 나섰다. 퀘이커 집회에 부지런히 참석해 가짜 피를 뿌리고 노예를 소유한 부유층들을 모욕하는 등 ‘게릴라 연극’을 펼쳤다. 여러 퀘이커 공동체들이 여러 차례 그를 파문했으나, 그는 굳건하고 비타협적이었다. 벤저민 레이는 1738년 세계 최초로 노예제 폐지를 요구하는 책 <무고한 이를 속박해두는 모든 노예 소유자, 배교자들>을 출판했는데, 이 책을 발행한 것은 그의 친구였던 인쇄업자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1815년 출판된 벤저민 레이에 관한 전기에 실린 벤자민 레이의 초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815년 출판된 벤저민 레이에 관한 전기에 실린 벤자민 레이의 초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730년대 이후 그는 새로운 유형의 ‘공통화’(commoning) 급진주의에 자신을 바치며, “자연에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인간이나 동물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동굴에 살며 스스로 재배한 음식으로 채식을 하고 스스로 지은 옷을 입었다. 설탕과 같이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모든 상품을 불매했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음에도, 주류 역사는 계몽되지 않고 적절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온전히 기록하고 평가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벤저민 레이는 18세기 후반 계몽운동과 같이 고위층과 연관된 계보가 아닌, 더 긴 궤적을 가진 “아래로부터의” 노예제 폐지론 역사에 속하며, 그에게는 양치기, 선원, 장갑장이, 소규모 상인, 평민으로서 보통 노동자의 사상과 실천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또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열심히 읽었던 사실을 상기하며 “권력에 대놓고 진실을 말하기”, 곧 ‘파레시아’를 실천했던 그의 면모도 함께 새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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