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선천적 편향성, 사회적 네트워크로 극복해와
디지털 가짜정보 검증할 ‘지식의 헌법’도 혁신 시작
디지털 가짜정보 검증할 ‘지식의 헌법’도 혁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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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진실을 공유하지 못하는가
조너선 라우시 지음, 조미현 옮김 l 에코리브르 l 2만1000원 “만일 우리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면, 당연히 사상의 시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의 민주주의도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인식론적 위기로 진입하고 있다.”(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방대한 규모의 정보 유통과 시공간을 초월한 의사 소통이라는 혜택을 가져왔지만,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의 범람, 음모론의 횡행 같은 부작용도 함께 야기했다. 공론장의 파편화, 정치적 양극화 등도 심각하다. <지식의 헌법>은 인터넷 시대에 ‘인식론적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지은이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편향적 인식과 부족 중심주의로 흐르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지식의 창출을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사회적 네트워크에 의존함으로써 이를 극복해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차를 지식으로 변환하는 우리 사회의 원칙”을 ‘지식의 헌법’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어떤 명제를 믿는다면 그것이 참임을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 기반 공동체(학문의 세계, 저널리즘의 세계, 정부 기관의 세계, 법률과 법학의 세계 등)에 제출해 검증을 받는 것이다. 대화는 학술지나 언론 등의 제도를 통해 중재된다. 이 체제는 지식을 만드는 방식에는 옳고 그른 게 있다는 공동의 이해가 바탕에 있으며, 팩트체크 같은 밀도 높은 규범 및 원칙의 네트워크, 동료 평가자와 전문가 들의 전문 지식에 의존한다. 이 공적 대화에서 모든 진술은 그것이 틀렸다는 걸 밝혀내려는 시도를 견뎌내야만 지식으로 확립되며, 진술을 점검하는 방법은 누구에 의해 행해지든 똑같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 지식의 헌법은 다양한 인식론적 정파에 지식을 만들려면 합의를 이룰 것을 요구한다.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오류를 찾아내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사회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지식의 헌법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지은이는 위협의 요소를 세가지로 나눈다. 먼저 디지털 미디어와 허위 정보. 상업용 인터넷은 ‘인식론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의 사업모델은 일차적으로 광고 중심이었고, 따라서 주목도가 최우선 가치였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고려는 부수적이었다. 더 나아가 디지털 정보 생태계는 허위 정보를 증폭시키는 성향들을 가지고 있다. 정보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광속으로 퍼져 나간다. 냉철함보다는 감정이 더 호응을 얻는다. 인신공격은 무시되지 않고 오히려 관심을 끈다. 평판에 대한 책임 대신 익명성이 번성한다. 두번째 위협은 ‘트롤러 인식론’이다. ‘트롤러’는 온라인에서 악의적이거나 허위인 게시글을 올려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교란자들은 ‘싯포스터’(쓰레기 같은 포스트를 올리는 사람), ‘립타드’(좌파를 비웃는 표현), ‘독싱’(신상 털기), ‘스워밍’(집단 공격) 등의 은어를 만들어냈다. 트롤러의 동기는 체제 파괴, 수익 추구 등도 있지만 지식 자체에 대한 공격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혼란을 야기하고, 진실을 위해 어디에 의지할지 모르겠는 인식론적 무력감을 불러 일으킨다. 지은이는 가장 ‘뛰어난 트롤러’로 트럼프를 꼽는다. 2020년 1월 <워싱턴 포스트> 팩트체크팀은 그가 하루에 22건의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2019년 3월2일 단 한 번의 연설에서 104건의 거짓말과 오해 소지가 있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임기 말에 그는 자기 정당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 심지어 옳고 그름의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세번째 위협은 ‘취소 문화’(cancel culture)다. ‘취소’(canceling)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의 에스엔에스 팔로우를 취소하는 데서 연유한 용어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이나 불매 운동 등을 통해 상대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트롤러가 혼란과 분열을 도모하려 했던 데 반해 캔슬러는 싸늘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려 들었다.” “전자는 주로 우익과 포퓰리스트, 후자는 주로 좌익과 엘리트주의자”들이 많다. 취소 문화가 확산되면 강의실 등에서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렵다. 학생들은 “한번 잘못 말했다가 또래들 사이에서나 소셜 미디어에서 비난의 불똥이 튈까 봐 걱정스럽고 어떤 말이 방아쇠가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위협들로부터 지식의 헌법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팩트체크팀을 만들고 실시간 허위 정보 경고를 검토하는 등 ‘진실 친화적 혁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은 디지털 미디어가 콘텐츠를 감시하고 혐오 뉴스나 가짜 뉴스를 삭제하도록 하는 법령을 채택했다. 트롤러들을 추적하는 학문적 기관과 비영리 단체가 전세계에 생겨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 구분법을 가르치고, 미디어 정보 해독력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한다. 취소 문화의 피해자들은 서로를 지원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지은이는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결국은 지식의 헌법이 자신의 길을 가리라는 긍정적 전망을 잃지 않는다. “현실 기반 공동체는 이보다 훨씬 더 나쁜 것도 견뎌왔다. 갈릴레이를 감옥에 가뒀던 재판관, 대륙마다 노동수용소를 갖고 있던 독재자, 자유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했던 인종차별주의자, 그리고 동성애 혐오자도 물리쳤다. (…) 소크라테스와 그의 젊은 제자가 2500년 전에 시작한 대화는 지금도 아테네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진압하려는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지난해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대선 패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 안으로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지난해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대선 패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 안으로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00/imgdb/original/2022/0106/20220106503979.jpg)
지난해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대선 패배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 안으로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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