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창 전 교수가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원로 독문학자인 정지창(76) 전 민예총 이사장은 영남대 독문학과 교수에서 정년 퇴임한 2013년부터 ‘동학’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대구 지역 문화운동가 추연창씨가 만든 옛 대구동학연구회에 합류해 고 이이화 선생 등 저명한 동학 전문가들을 초청해 회원들과 동학사상을 탐구했고,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등 동학 지도자들의 행적을 살피는 답사 기행도 여러 차례 했다. 그가 2018년부터 2년 동안 초대 공동이사장으로 이끈 사단법인 생명평화아시아(이사장 유한목) 회원들과도 동학과 대종교·증산교·원불교 등 이 땅에서 자생한 종교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사상’을 탐색하는 세미나를 10차례 이상 했다. 그와 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등 여섯 명이 최근 함께 낸 <한국 생명평화사상의 뿌리를 찾아서-한국 근현대 사상 세미나 1>(도서출판 참)는 그 결실이다. 정 전 교수는 책에 실린 글 9편 중 동학사상과 수운·해월 및 의암 손병희 등 동학 지도자들의 사유와 행적을 세밀히 살피는 5편을 썼다.
지난 4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자택에서 정 전 교수를 만났다. 그는 29년을 영남대 교수로 있었지만 퇴직 때 명예교수 호칭을 받지 못했다. 2012년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이 결성한 ‘영남대재단 정상화 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남대 재단 복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재단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것이다.
서양 문학을 전공한 그가 만년에 동학 탐구에 열의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년 후 뒤늦게 5대조 할아버지가 충북 진천에서 동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큰집에서 쫓겨나 제가 초등 3학년 때까지 살던 충북 보은군 회남면 어부동 산골 마을로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형님께서 문중 어르신으로부터 우연히 듣고 저한테 전해주었죠. 지금이라도 선조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살았는지 알고 그것을 자식들에게 알려줘야 나 자신에게도 떳떳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동학은 100년이 지나도 집안에서 쉬쉬할 만큼 금기였을까? “공포심 때문이죠. 동학 농민군이 봉기한 1890년대에 25만명이 죽었다고 해요. 종이 되거나 가산을 빼앗긴 동학도들도 부지기수이죠. 답사 때 알게 된 사실인데, 경북 예천의 동학군 지도자 전기항은 보복을 피해 소백산 산골로 도망가 화전민 생활을 하며 12군데 움막을 전전하다 1900년에 돌아가셨고 그 후 수십 년이 지나 손자 대에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해요. 그 지역이 보수적인 유림이 강한 곳이라 귀향하고도 선조의 동학혁명 가담 사실을 숨겼다고 합니다.”
그가 지금은 고문으로 있는 생명평화아시아는 대구지역 시민운동가나 지식인 수십 명이 생명평화 가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대구에서 시민운동을 오래 한 성상희 변호사가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을 고민하다 설립을 제안했죠. 생명평화 사상을 연구해 환경운동의 대안을 제시하고 또 기금을 모아 현장 활동가들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의사·변호사 등 사회적 기반을 갖춘 회원들과 그 지인들이 내놓은 기금으로 환경 운동가들이 몇 달씩 유급 휴가를 쓰도록 지원도 합니다.”
생명평화아시아는 다른 환경 단체들과의 연대에 힘을 쏟는 한편 대구·경북 지역 환경오염 실태를 보여주는 보고서나 책자도 여러 권 냈다.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내성천의 아픔을 현장 취재로 기록한 <내성천의 마지막 가을, 눈물이 흐릅니다>(2018, 정수근)와 이 단체 손영호 상임이사가 영덕 핵폐기장 반대 주민운동을 세밀히 기록한 <영덕 반핵운동 연구>(2019)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의 ‘한국 근현대 사상’ 공부 모임에는 제안자인 정 전 교수를 포함해 10여명이 참여했다. “정년 뒤 동학을 공부하다 한국의 자생적 생명평화 사상이 동학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보통 에콜로지(생태학) 하면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잖아요. 고 김종철 선생이 발간한 <녹색평론>도 서양 생태사상을 많이 소개했어요.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리 땅에서 생겨난 전통 생태사상을 소홀하게 다룬 측면이 있죠.”
그는 동학 생명평화 사상의 대표적인 예로 동학 2대 교조인 해월의 삼경 사상을 들었다. “하늘과 사람 그리고 물을 다 공경하자는 삼경 사상은 수운 때부터 이어져 오다 해월이 구체적으로 말했죠. 여기서 물은 ‘생물’과 ‘무생물’을 다 포함해요. 무생물까지 모시자는 발상은 생명평화 사상에서 엄청난 진일보입니다.”
2013년 영남대 정년…‘명예교수’ 못받아
‘박근혜 재단 복귀 반대’ 이유로 보복
“뒤늦게 5대조때 동학 가담 내력 알아”
2018년 ‘생명평화아시아’ 창립 앞장
한국근현대사상 공부모임 ‘공저’ 펴내
‘한국 생명평화사상의 뿌리를 찾아서’
생명평화아시아 창립식 때 해월의 생명평화 사상이 잘 드러나는 ‘천지 부모’ 설법을 직접 읽었다는 정 전 교수는 “해월은 ‘하늘과 땅을 부모처럼 모셔야 한다’고도 했다”며 말을 이었다. “해월은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의 살처럼 하라고 했죠. 그 시절 누구나 알아듣는 효 개념을 끌어와 생명평화 사상을 쉽게 이야기했어요. 부모인 하늘과 땅을 사람이 모시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화가 나서 자식인 사람을 버린다고도 했죠. 오늘날 생태위기나 기후위기가 해월이 말한 바로 그 벌이죠.”
지난해 40년 가까이 살던 대구를 떠나 아들 집과 가까운 용인으로 이사한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한국 근현대 사상’ 세미나 후속으로 ‘한국 현대 생명평화 사상’ 세미나를 하고 있다. “김종철·김지하·윤노빈·장회익·백낙청 생명평화 사상을 줌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 9년 동학에 대해 가장 크게 깨친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서양의 기독교 신은 위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인간을 지배하지만 동학에서는 나와 하느님이 대등합니다. 서로 돕는 상보적 관계이죠. 도올 김용옥은 이런 신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에서 백성이 주인 되는 민본 세상(그리스어 플레타르키아)이 열릴 수 있다고 했죠. 그게 바로 ‘개벽’이라고요. 서양식 민주정치인 대의제 민주주의도 민본 세상과 어긋나게 결국은 기득권자들이 지배하잖아요. 하느님과 인간이 대등하다는 동학사상이 민본 세상으로 가는 사상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봐요.”
그는 1905년 천도교로 개칭한 동학이 일제 말 친일과 해방 뒤 두 교령의 월북으로 세가 위축됐지만 앞으로 이론과 사상적 담론의 장에서 파급력이 커질 것으로 봤다. “고 장일순의 한살림운동이나 김지하의 생명평화운동 모두 해월사상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싹이 텄어요. 요즘 도올도 동학사상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어서 고무적입니다. 지난 민주화 투쟁 성과와 경제 발전으로 나라 역량이 성장한 데다 문화적 자신감마저 생겨 이제는 동학을 우리 것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봅니다.”
수운의 탄생지나 효수지 등 동학 유적지 답사 기행에서 느낀 점을 묻자 그는 “지자체에서 관광 자원화하는 일은 열심이지만 동학 정신 선양과 같이 빛이 나지 않는 일은 소홀한 것 같다”고 말했다. “1864년 수운이 효수당한 대구 계산동 관덕정 터에는 지금 3층짜리 천주교 순교 기념관이 있어요. 거기서 천주교 신자들도 처형당했거든요. 서양 종교에 밀린 동학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죠.”
정지창 전 교수가 재작년에 펴낸 문학에세이 <문학의 위안> 표지.
정 전 교수는 1980년 대학 교단에 서기 전 8년 동안 옛 <합동통신 > 기자로 일했다 . 그가 재작년 펴낸 문학에세이 <문학의 위안 >(한티재) 추천사에게 염무웅 교수가 밝힌 대로 그의 평론 글이 독자에게 공연한 부담을 주지 않고 편하게 읽히는 데는 짧은 시간에 명료하게 사실을 전해야 하는 통신사 기자 시절의 훈련이 꽤 작용했을 듯하다 .
그는 기자를 그만 두기 직전에 풀기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해 유신 체제를 종식한 김재규 재판을 취재하기도 했단다. 외신부 기자 시절에는 기사 문제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야근 때 <에이피 > 통신이 도쿄발로 북한 매체를 인용해 ‘북한에서 세금을 없앤다’고 보도했어요. 이 내용을 받아 기사를 썼는데 다음날 조간신문에 기사가 나왔어요. 그때 총리였던 김종필이 ‘요즘 세금 많다고 불만이 많은데 왜 이런 기사가 나왔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해요. 남산에서 하루 이틀 고생하다 풀려났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