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들녘 펴냄. 8000원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들녘 펴냄. 8000원
잠깐독서
‘책은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놓는다.’ 책읽기가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출생의 작가인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는 소설 <위험한 책>(들녘 펴냄)에서 ‘인간은 책에 희생되기도 한다’는 다소 엉뚱하고도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애증으로 바뀌어 결국엔 책과 자기 삶의 운명을 함께하고자 했던 한 애서가를 추적한 소설이다.
아주 짧은 이야기는 미스터리 추리물처럼 전개된다. “책에 희생된” 여자 강사의 죽음이 발단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문학강사인 블루마 레논은 런던 시내의 어느 책방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을 사서, 첫번째 교차로에 이르러 두번째 읽으려는 순간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그리곤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의 <섀도 라인>이 숨진 블루마 앞에 배달된다. 블루마와 연인 사이이자 대학강사인 ‘나’는 이 책을 보낸 ‘카를로스 브라우어’란 사람을 찾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향한다. 곧이어 ‘나’의 여행 과정에 블루마와 브라우어는 우루과이에서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 사이였음이 밝혀지고 브라우어의 정체도 조금씩 드러난다.
브라우어는 “강박적 독서가” “책에 중독된 사람”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혼자 사는 그는 서가를 자기만의 세계로 꾸미고자 2만여권의 책을 수집했고, 책들이 엄청 늘어날수록 책에 대한 집착도 키웠다. 책으로 가득 찬 거실과 침실에서 밀려난 그는 다락방에 살며, 종이를 갉아먹는 책벌레들과 전쟁을 치르고, 표절 논란을 벌인 셰익스피어와 말로 책들은 서로 멀찌감치 두는 식의 독특한 도서분류법을 개발했다. 서지보관함이 불탄 화재 사고는 그에게 절망이었다.
마침내 그는 우루과이의 외딴 해변마을로 이사해 시멘트를 바른 책들을 벽돌 삼아 ‘종이집’을 완성한다. ‘내’가 물어물어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거기에선 책들이 무너져내려 폐가가 된 종이집의 운명, 그리고 블루마에 뒤늦게 배달된 <섀도 라인>의 숙명이 극적으로 겹쳐 이야기 전말이 드러난다. “저 내구성 있는 물체와 인간의 관계는 결코 무해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옳다. 저 부드럽고 쉽게 소멸되지 않는 책이라는 사물은 인간과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다고.”(83쪽) 책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집착과 애서족의 독특한 습성에 대한 유쾌한 상상력과 지적 유희를 엿볼 수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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