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뗏목
조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1만1천원
조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1만1천원
잠깐독서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에서 떨어져나와 뗏목처럼 대서양으로 흘러간다면?
엉뚱한 상상이지만, 유럽통합을 앞둔 포르투갈의 현실에 빗댄 속뜻은 기발하게 읽힌다. ‘늙은 이야기꾼’ 주제 사라마구는 주인공 다섯명의 여행을 통해, 이 한편의 그럴듯한 우화를 거칠 것 없는 입담으로 풀어낸다.
이야기는 이베리아 반도에 사는 다섯사람이 비슷한 시간 각각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는 것에서 시작된다. 누구는 숲속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었는데 아무리해도 금이 지워지지 않고, 또다른 누구는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 집채만한 돌을 ‘원반 던지기’ 선수처럼 번쩍 들어 바다로 던진다. 난데없이 찌르레기 떼가 뒤를 따라다니고, 심심해 풀기 시작한 양말의 파란 실은 끝없이 풀어져 산처럼 쌓이고, 발 아래 땅이 갈라지는 진동을 홀로 느끼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는 ‘반도 분리’의 순간을 동시에 느꼈다는 운명으로 얽힌 이들은 만나고, 사랑하고, 함께 길을 떠난다.
첫 소설을 쓰고 20년동안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했던 작가답게, 사라마구는 소설 중간중간 “자기한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느끼면 언제든지 세계의 일에 끼어들던 백악관”이나 “눈앞에 닥친 재앙에 무능한 포르투갈 정부” 등을 드러냄으로써 현실세계를 비꼰다. 이런 신랄한 풍자는 꽤 유쾌하지만, 비유적인 그만의 화법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문장 자체가 상당히 꼬여있는 탓이다. 사라마구의 이야기를 즐기려면, 일단은 따옴표나 물음표 하나없이 쉼표로 길게 이어진 문장들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또다른 작품 ‘동굴’,‘도플갱어’ 등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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