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탈희소성 사회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아론 베나나브 지음, 윤종은 옮김 l 책세상 l 1만5000원
인공지능(AI) 같은 최첨단 과학기술 발전은 날이 갈수록 ‘자동화’에 대한 기대를 앞당기고 있다. 기대에는 우려가 뒤따른다. 완전 자동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필요치 않게 될까? 이 같은 우려를 앞에 두고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제기되는 대안적 담론 가운데 하나가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과 예외를 두지 않고 일정한 소득을 준다면, 자동화에 따라 벌어질 대량 실업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더 나은 내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독일 튀링겐의 도시 게라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나르는 운송 로봇들이 시험 운전을 하고 있는 모습. 아론 베나나브는 과학기술 발전이 아닌 과잉 생산에 따른 불황이 노동저수요의 핵심 원인이라 짚는다. 튀링겐/dpa 연합뉴스
미국의 경제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아론 베나나브는 첫 저작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2020)에서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런 주장을 ‘자동화 담론’이라 범주화하고, 이를 주창해온 좌·우파 자동화 이론가들의 논리적 오류들을 지적하고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다만 지은이의 입장은 자동화 담론 자체를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공격하는 게 아니라, 좌파 입장의 대안적 상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핵심적인 문제는 저것보다는 이것’이라며 논점의 전환을 이끄는 시도에 가깝다.
1950~2010년 각 나라에서 전체 고용 가운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 추이. 아론 베나나브는 자동화가 아니라 생산능력의 과잉과 과소 투자가 노동저수요의 핵심 원인이라고 짚는다. 표 책세상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특정 경제 부문에서 생산한 부가가치, 곧 산출량은 어느 정도 규모의 노동을 투여했는지에 따라 생산성이 결정된다. 산출량이 증가하는 속도에 견줘 생산성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높으면 일자리는 줄어든다. 자동화 이론가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생산성이 더 빠르게 늘기 때문에 노동수요가 줄어들며, 현재 대량 실업이 예고되어 있는 서비스업에 앞서 제조업에서 이미 이런 일이 벌어져왔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것을 넘어 아예 노동을 대체한다면 아예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톺아본 지은이는 “제조업에서 생산성 증가율이 산출량 증가율에 비해 높게 나타나지만, 이는 생산성이 개선되는 속도가 빨라져서가 아니라 산출량이 과거에 비해 훨씬 느린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에 비교적 높게 나타난 것”이라고 짚는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서 되레 주목해야 할 것은 산출량 증가율의 감소, 곧 제조업의 성장 둔화라는 지적이다. “제조업 생산성은 추락하는 산출량 증가율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1950~2014년 세계 ‘제조업 실질 부가가치’(MVA)와 국민총생산(GDP)의 변화. 1970년대 이후 두 지표 모두 성장률이 둔화되어 온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 책세상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은이는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과잉 생산과 이에 따른 과소 투자가 핵심 문제라고 지적한다. 제조업은 1970년대부터 부진에 빠졌는데, 서비스업 등 어떤 분야도 경제성장의 주된 동력으로서 제조업을 대신하지 못해 세계 경제 전반의 ‘장기 불황’과 이에 따른 ‘노동저수요’를 불렀다는 것. 통계를 보면, 1950~2014년 사이 세계 제조업의 실질 부가가치(MVA)의 연평균 성장률은 국내총생산(GDP) 연평균 성장률과 함께 꾸준히 하강하여 2008~2014년에는 나란히 1.6%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왜 사회 전반에서 노동수요가 줄어드는지, 실질 임금의 정체, 노동소득 분배율 감소 등의 문제가 어디(제조업 부진)에서 비롯되는지 설명한다.” 거대 자본은 새로운 고정 자본에 장기 투자하는 대신 유동성 높은 자산 취득으로 수익을 내고자 금융 부문으로 몰려들었지만, 금융화 비율이 높은 고소득 국가들조차 여전히 제조업의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에서 배달 플랫폼 운영 사업자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배달 노동자의 모습. 런던/AP 연합뉴스
노동저수요가 대량 실업보다는 만성적인 ‘불완전고용’으로 나타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성장률 둔화와 노동저수요에 대응해왔고, 임금소득밖에 없는 대다수 인구는 노동시장 조건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찾아야 했던 결과다. 제조업 불황으로 이들은 서비스업에 더 몰리게 되었지만, 생산성이 정체된 서비스업에서는 ‘초과 착취’가 일어나기 훨씬 쉬웠다. 제조업이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 아래 서비스 부문에서 고용이 늘어나는 속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노동계급 중심의 사회운동 역시 힘을 급격히 잃어갔다.
1980~2010년 각 나라의 서비스 부문 산출량·생산성·고용 추이. 낮은 생산성 때문에 서비스업이 제조업의 자리를 대체하지 못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표 책세상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은이는 모든 이들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공동의 재생산을 위한 필요노동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 ‘탈희소성(post-scarcity) 사회로의 이행’을 주장한다. 이는 토머스 모어, 에티엔 카베, 카를 마르크스 등이 이어온 계보 위에 있으며,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좌파’ 자동화 담론이 지향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다만 문제의 핵심이 과학기술 발전이 아니라 과잉 생산과 과소 투자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이를 온전히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자동화 이론가들의 말대로 노동수요가 줄어든 원인이 생산성 증가에 있다면,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는 ‘분배’에 있으며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 적절한 방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은이의 지적처럼 과잉 공급과 과소 투자가 원인이라면, 문제의 초점은 분배가 아니라 “‘생산’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어떻게 줄일 것이냐”로 모아져야 한다.
“기본소득은 자본의 권력은 그대로 둔 채 노동자에게 권한을 부여하지만, 그나마도 노동자가 의식주를 비롯한 ‘동물적 기능’을 보다 자유로이 수행하도록 거들 뿐 그 바탕에 깔린 사회적 조건을 바꿀 만큼의 힘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더라도, 자본은 이제까지와 별다를 것 없이 투자 회수와 자본 도피 등 ‘자본 파업’이라는 특권을 휘두르며 자신의 요구를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생산을 장악하는 데에서 탈희소성 사회로의 이행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이 해마다 이윤의 2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해 노조가 관리하는 기금에 양도하도록 구상했던 스웨덴의 ‘마이드너 플랜’ 같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또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록 역사적 노동운동은 “완전한 패배”를 했지만, 새로운 변화의 주체가 등장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기대를 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